[정재민의 서초동 아고라] 법복 벗은 뒤에도 법정으로 출근하다
변호사가 된 뒤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역시 법정이다. 하지만 판사 시절과는 법정에 들어가는 방식부터 달라졌다. 판사였을 때는 법복을 입고 재판 시간에 맞춰 법원 내부 복도를 통해 법관 전용 출입문으로 입장했다. 법정 경위의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라는 구령에 따라 모두가 일어선 가운데 법대에 올라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았다.
변호사인 지금은 재판에 늦으면 불출석으로 처리될 수 있어 항상 여유 있게 법정에 도착한다. 이후 전광판을 보며 담당 사건이 언제쯤 진행될지 확인한 뒤 차례를 기다린다. 경위가 법정 밖으로 나와 내 이름을 부르며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면 법정으로 들어가 방청석에 앉아 앞선 사건의 재판을 지켜본다. 그러다 재판장이 내 사건 번호를 부르면 앞으로 나가는데, 이때 서는 위치는 민사 법정과 형사 법정이 조금 다르다.
동일하게 떨어져 앉는 판사, 피고인 옆에 앉는 변호사
민사 법정에서는 방청석에서 법대를 바라봤을 때 왼쪽이 원고석, 오른쪽이 피고석이다.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는 원고나 피고 바로 옆자리에 있는 ‘원고(피고) 대리인’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앉는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은 모두 판사를 향해 나란히 앉을 뿐, 서로를 마주 보지는 않는다. 형사 법정의 배치는 다르다. 방청석에서 법대를 바라보면 왼쪽에는 검사석이, 오른쪽에는 피고인석과 변호인석이 있다. 이때 검사와 피고인 측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다. 검사와 피고인이 모두 판사를 향해 앉는 미국의 형사 법정과도 차이가 있다.
판사였을 때는 법대 한가운데 앉았지만, 지금은 의뢰인이나 피고인 바로 옆에 앉는다. 법정에서의 자리 변화는 업무의 본질을 설명해 준다. 판사일 때는 양측 당사자들과 똑같은 거리로 떨어져 누구의 편도 들면 안 됐지만 지금은 한쪽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의뢰인으로부터는 신뢰받지만 판사로부터는 의심받는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장은 사건 번호를 부른 뒤 가장 먼저 변호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한다. 그때 나는 “정재민 변호사 출석했습니다”라고 답하는데, 이때면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법정에서의 호칭은 사건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형사재판에서는 ‘변호인’이라고 불리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원고 대리인’ 또는 ‘피고 대리인’으로 불린다. 이때 ‘변호인’과 ‘원고(피고) 대리인’은 법정에서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이고, ‘변호사’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을 뜻하는 말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재판 당사자가 유명한 연설가에게 변론을 부탁하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대가를 받고 변론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로마시대에 이르러 유상 변론이 가능해졌고, 동로마제국 때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변호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그때부터 변호사 제도가 시작된 셈이다.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존재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고인을 위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많다. 보석이나 체포·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고, 증인신문을 하고, 증거를 찾아 제출하고, 영장 집행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재판 과정에서도 언제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법률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피고인을 위해 판사와 검사의 말을 대신 알아듣고 변론하는 일종의 통역사 역할도 한다.
변호인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검사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변호인석에 설 때면 투수가 돼 마운드에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야구에서 투수는 방어의 핵심이다. 타자의 성향에 따라 적절히 직구나 변화구, 체인지업을 골라서 던진다. 형사재판에서 입증책임 원칙이 검사에 비해 피고인에게 조금 유리하게 설계된 것도 투수가 서 있는 마운드가 볼을 던지기 쉽도록 조금 솟아 있는 것과 조응한다. 투수는 공격은 못 하고 오로지 수비만 한다. 이때 1점이라도 실점하면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된다.
‘호날두’ 형사재판 vs ‘메시’ 민사재판
변호사에게도 전문 분야는 다양하고, 저마다 의미가 있다. 그중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가장 전통적 역할이라 할 수 있는 형사 변호였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 특정 분야만 맡는 대신, 규모는 작더라도 내 로펌을 세운 이유 가운데 하나도 형사 변호사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여타의 재판은 주로 법적 효과를 밝히지만 형사재판은 진실을 밝히고, 여타의 재판은 사건을 재판하지만 형사재판은 사람을 재판한다. 또한 여타의 재판에서는 돈이 중심이 되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억울함을 풀고 정의를 세우는 일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고 민사재판에 정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공정하게 분배되고 약속대로 지급되는 것이 곧 정의다. 개인적으로 민사재판이 형사재판보다 재미있기도 하다. 논리적 진지를 구축하는 일도, 상대의 논리적 진지를 날카로운 논리의 돌덩이를 날려 깨부수는 일도 재미있다. 사법시험 때도 사법연수원생 때도 민사 성적이 제일 좋았고, 판사 시절 민사 판결을 한 경험과 법무심의관으로서 민법 개정을 한 경험도 있어서 민사소송을 즐기는 편이다. 각각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리오넬 메시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마이클 조던 vs 르브론 제임스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은 변호인의 출석을 확인한 뒤 피고인을 세워둔 채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이름·생년월일·직업·주소·등록기준지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 법정에 출석한 사람이 공소장에 적혀 있는 사람과 동일인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판사는 재판의 첫 절차인 인정신문부터 불신을 바탕으로 판단하며, 재판 내내 그 불신을 없애기 위한 각종 확인을 거친다.
인정신문이 끝나면 재판장은 검사를 쳐다보면서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검사가 공소장을 보며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한다. 공소장은 검사가 주장하는 피고인의 공소사실, 죄명, 적용 법조가 적힌 공문서다. 공소(公訴)는 공익을 위해 공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이라는 뜻이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제기하는 사소(私訴)와는 다르다. ‘공판’도 공적인 재판이라는 뜻으로 형사재판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소장은 수사를 마감하는 자물쇠이자 형사재판의 문을 여는 열쇠다. 민사재판이 원고의 소장으로 시작되듯 형사재판은 검사의 공소장으로 시작된다. 형사재판은 결국 판사가 공소장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판사가 보기에 공소장 내용이 옳으면 유죄판결이 나고, 옳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요즘은 수사권이 거의 다 경찰로 넘어갔지만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만 해도 형사절차는 사실상 검사가 주도했다. 경찰 수사의 지휘는 물론 큰 사건은 직접 수사했다. 판결이 나면 형을 집행하거나 가석방 또는 사면하는 일도 주도했다.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들은 판사에게 징역 5년을 받아 징역형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형벌을 가하는 주체는 검사가 소속된 행정부다. 판사는 행정부가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유무죄나 형량에 일정 정도의 개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검사가 무혐의 결정, 불기소 결정, 기소유예 결정으로 풀어주는 경우가 판사가 무죄판결로 풀어주는 경우보다 수십 배 많다.
형사법에는 불고불리(不告不理) 원칙이란 것도 있다. 검사가 알리지 않으면 판사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사가 길을 가다가 대로변에서 ‘묻지 마 칼부림’을 하고 있는 범죄자를 보더라도 바로 재판할 수 없다. 검사가 기소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범위 내에서만 재판할 수 있다. 가령 그 범인이 세 사람을 칼로 찔렀는데 검사가 두 사람을 찌른 부분만 기소하면 판사는 그것만을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기소의 여부와 범위를 오로지 검사만 결정하는 제도를 ‘기소독점주의’라 한다.
만약 검사를 했다면…변호인석서 본 법정 풍경
나쁜 사람을 처벌하고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는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검사인 만큼, 법과대를 다닐 때부터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까지 검사를 지망했다. 판사 일은 수동적이고 정적이라 보람과 재미가 적을 것 같았고, 변호사는 무조건 돈을 주는 사람을 편들어야 할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또한 판사는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간접적으로 짧게 보지만 검사는 다양한 사람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법무관 때 국방부 정책실에서 공무원, 군인과 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은 국민을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피라미드형 상명하복 조직인 검찰보다는 개개인이 존중되는 판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되니 예상했던 대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대부분 남의 말을 듣고, 남이 제출한 서류를 읽은 뒤 수동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물론 그런 자리였기에 얻은 것도 있었다. 만약 같은 나이에 검사가 됐다면 범죄를 밝혀내는 성취를 맛봤을 수 있지만, 공명심에 수사권을 함부로 휘둘러 누군가에게 억울한 생채기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평생 수동적인 업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부장판사 승진을 1년 앞두고 사직서를 냈고, 공채시험을 거쳐 행정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바로 판사가 된 것은 말하자면 축구선수로 뛰기도 전에 감독부터 된 셈이었다. 더 늦기 전에 선수로 뛰어보고 싶었다. 그것도 고위급인 국장급이 아닌 중간관리자인 과장이나 팀장을 맡아 팀원과 부대끼며 일해 보고 싶었다. 협업하는 기쁨과 괴로움을 몸소 겪고, 그로 인한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키우고 싶었다. 세상의 갖가지 비루함과 악다구니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날아다니는 학의 인생 대신, 진흙탕을 뒹구는 뱀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사는 듯 사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법복을 벗어던진 후 방위사업청에서 군함을 만들거나 무기체계를 수출하는 일에 관여했고, 법무부에서는 국회의원 부럽지 않게 여러 법을 만들었다.
수동적으로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 대신 능동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니 적성에도 맞고 보람도 컸다. 만약 부장판사가 돼 법대 위에 20년 넘게 앉아서 같은 생활을 해왔다면 머리에 서리가 더 앉았을 뿐 지금만큼의 활기와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변호인석에 앉아 있으면 과거에 가려 했다가 가지 않은 길(검사)과 이미 갔던 길(판사)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지금 가고 있는 길(변호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정재민
●1977년 경북 경주 출생
●現 JM파트너스 대표변호사
●前 법무부 법무/송무 심의관
●前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