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의 투시경] 전당대회 승리로 한 숨 돌렸다지만…● 李, 보완수사권 폐지에 신중론 펼쳤지만…
● 대통령보다 ‘당원’ 두려워하는 與 의원들
● 당원 향한 개방 행보, 대통령 되자 역풍
● ‘제2의 보완수사권’ 요구 외면 어려운 구조
● ‘정청래 역습’ 저지했지만 여유 길진 않을 듯“이렇게 빛의 속도로 형사소송법이 빨리 개정된 것은 처음일 것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8월 3일 법무부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여당의 보완수사권 폐지 강행에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기에 친민주당 성향의 시민단체들도 신중론을 펴온 사안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한 범여권은 여론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검찰을 향한 민주당의 20년 복수심이 ‘지옥문’을 열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보다 ‘당원’ 두려워하는 與 의원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누구 의중이었을까. 적어도 이재명 대통령은 아닌 듯하다. 8월 4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검찰은 물론이고 경찰 수사도 못 믿겠더라”라는 발언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예전부터 줄곧 검찰과 경찰의 상호 견제를 강조해 왔다. 2017년 1월 30일 성남의 한 경찰서와 지구대를 찾아 “권력은 독점하면 부패하기에 분할해서 상호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11월 1일 분당경찰서가 자신에게 ‘조폭 연루설’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자 “대한민국은 경찰국가가 아니다”라며 “이런 경찰이 독자 수사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아찔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제20대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21년 8월에는 ‘검수완박’에 동의하면서도 “수사권을 경찰에 다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권력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자”면서 말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가 화두로 떠오른 2026년에도 이 대통령은 거듭 신중론을 폈다. 지지층의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처리하긴 곤란하니 “국회에서 논의하라”며 여당에 공을 넘겼다. 그런데 눈치 없는 국회의원들이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였다. 아니, 눈치 없다기보단 줄을 잘 선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겠다. 누가 더 센지 계산이 끝난 것이다. ‘검찰 수사권을 하나도 남김없이 해체하라’는 당원들의 거센 요구에 이 대통령은 수레바퀴 앞에 선 사마귀처럼 초라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정국에서 나타난 정부와 민주당 당원들의 불편한 긴장 관계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확실한 걸 알 수 있다. 여당 의원들이 집권한 지 1년 조금 넘은 대통령보다 당원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8·17 전당대회를 앞둔 탓이었다고는 하나,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은 의원들마저 당원 눈치를 살피며 보완수사권 폐지에 동참했다. 그만큼 당원의 힘이 막강하다는 방증이다. 민주당은 명실상부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 됐다.
아이러니한 건 지금의 민주당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인물이 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는 2022년 제20대 대선을 치를 때까지도 배지 한번 단 적 없는 ‘변방의 장수’였다. 민주당 주류인 86세대 운동권 그룹과 연결고리도 부족했다. 줄도, 조직도 없던 이 대통령은 당내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당 바깥의 지지를 당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지금도 한국 정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팬덤 정치’다.
이 대통령은 순전히 개인기로 재선 성남시장, 경기지사,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기초단체장 중에선 압도적 존재감을 보인 그였지만, 당내 세력이 없어 늘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중앙 정치에 처음 도전장을 내민 2017년 대선 경선에서 그를 돕는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21.2%를 득표했다. 3위였다고는 해도 ‘친노(親盧·친노무현) 적자’ 안희정(21.5%) 바로 뒤였다.
2022년 대선에선 여당 후보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선거를 돕지 않는다”는 말이 파다했다. 당시 국회는 21대 국회로 문재인 정부 전성기인 2020년 구성됐다. 공천 당시 청와대 힘이 막강했던 만큼 친문(親文·친문재인) 성향이 짙을 수밖에 없다. 친문 의원들은 내심 이 대통령이 선거에서 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바람이 통했는지, 이재명은 윤석열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당원 향한 개방 행보, 대통령 되자 역풍
이 대통령에게 2022년 대선 패배는 ‘각성’의 계기였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한 걸까. 그는 대선에 패배한 정치인이 정계를 잠시 떠나던 관례를 깨고 6월 재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심지어 정치적 고향인 경기 성남이 비었는데도 인천 계양을로 향했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당대표를 노렸다. ‘지금 당권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침 ‘사이다’ 이재명의 선명한 컬러에 매료된 지지자들의 입당이 쇄도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개혁의 딸, ‘개딸’이라고 불렀다. 개딸은 친문 구주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천군만마였다. 이 대통령은 개딸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2022년 8월 당대표에 올랐다. 득표율 77.77%.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고 득표율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얻은 77.5%를 넘는 기록이었다.
당원들의 압도적 성원에 힘입어 당대표가 된 그는 당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당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원 비중을 높인 것이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도, 의원들의 반장 격인 원내대표 선출에도 당원 투표가 반영됐다. 민주당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의원의 결정권이 축소된 것도 이재명 대표 체제일 때다. 민주당은 2023년 11월 권리당원 표 가치를 높이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전까지 민주당에선 대의원의 한 표가 권리당원의 60배 정도 가치를 지녔다. 그런데 이때의 당헌 개정으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가 20대 1 미만으로 좁혀졌다. 덕분에 그는 2024년 8월 당대표 선거에서 85.4%라는 전무후무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무현에게 노사모가 있었다면 이재명에게는 당원이 있었다.
‘당원주권시대’를 맞은 민주당에서 이재명에게 필적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원내 기반이 취약했던 그에게 당원은 든든한 뒷배였다. ‘명심’에 맞서는 이는 살아남지 못했다. 2023년 여름, 이재명 당시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무산시키는 데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던 비명(非明·비이재명)계는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으로 낙인찍혀 사실상 당에서 퇴출됐다. 2024년 최고위원 선거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이재명 같은 사람들은 대통령 되면 안 된다”던 과거 발언이 들통나는 바람에 경선에서 1위를 달리다가 당선권 밖으로 순식간에 밀려났다.
당원들은 다수 군중이었지만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적극 활용했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 직전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이례적으로 전국 권리당원에게 투표권을 줬다. 전국 권리당원 70%, 지역 권리당원 30%를 반영했다. 이 지역은 당대표 선거 당시 이 대통령과 맞섰던 박용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결국 그는 세 번의 ‘비명횡사’ 경선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일 때와 대통령일 땐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는 실제로 대미·대일 외교나 원전 등의 산업 분야에서 기존 민주당 인사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검찰 같은 권력기관 개혁에서도 정청래·최민희 등 여당 내 강경파와는 궤를 달리한다.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탓이다. 공소 취소든 뭐든 국민적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심에만 기댈 수 없다.
문제는 당원에게 문을 너무 많이 열어뒀다는 것이다. 전당대회에서도 경선에서도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치를 오래 하려면 국민이 좋아하는 정치인보다는 당원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되는 게 훨씬 유리하다. 국민적 요구와 당원들의 요구가 일치한다면 이런 현상은 긍정적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다. 양극화한 정치 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정청래 역습’ 저지했지만 여유 길진 않을 듯
정치인 정청래는 당심을 하나의 힘으로 응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메가패스’ 시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해 온 그는, 친여 성향 커뮤니티에 “10년 동안 1500번”이나 글을 쓰며 지지층과 유대관계를 다져왔다. 검찰개혁 세부 의제를 놓고 이재명 정부와 지지층이 마찰을 빚자, 이를 ‘매의 눈’으로 포착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1인 1표제’ 같은 이슈를 띄웠다. 하나는 실패했지만 하나는 성공했다. 이로써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반쯤 열렸던 문이 완전히 열렸다. 조국혁신당과 합당이 무산되고, 지방선거 핵심지에서 참패했음에도 정청래라는 인물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당원들의 힘이 뒷받침된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도 정청래 의원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올해 초 검찰개혁추진단이 내놓은 개혁안에 당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대리인에게 보완수사권 폐지 찬성 여부를 쏘아붙였다. 그의 뒤를 따르는 당원이 워낙 많았기에, 대통령 의중을 아는 친명계 의원들조차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만 놓고 보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여권에 매우 불리한 이슈다. 폐지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7월 셋째 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61%였던 반면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무선 전화 면접조사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장의 찬반 여론보다 후속 효과의 영향은 더 클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피해가 누적될수록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테니 말이다. 이 사안에 관한 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그 책임을 오롯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중도 실용을 표방하며 민생 현안에 집중하려 한다. 그래야 국민의 너른 지지를 얻을 수 있어서다. 애석하게도 여권 핵심 지지층에 민생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 민생보다 중요한 건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것, 그래서 노무현과 조국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끝나지 않았다. ‘제2의 보완수사권’은 계속 대두될 것이다. 2019년 공수처 설치가 그랬고, 2022년 ‘검수완박’이 그랬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도 언제 표적이 될지 모른다. 사법개혁·언론개혁도 남았다.
8·17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 친명계인 김민석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서 한숨 돌렸다지만 여유가 오래갈 것 같진 않다. 민주당의 주인인 당원이 앞선 개혁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원들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 그 자신이 당원들에게 문을 너무 많이 열어놓은 탓이다. 전당대회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더 강력한 개혁’을 원하는 여당 지지층의 이해관계는 계속 충돌할 공산이 크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의 균형추는 당원에게로 기울 수밖에 없다. 벌써 이렇게 휘둘리고 있으니 말이다. 남은 4년도 험난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