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칼럼] 안보 부처 ‘이상한 논쟁’ 넘어 ‘행동하는 이상주의’ 보여줄 때
● 국민에 좌절감 준 외교·통일부 공개 논쟁
● 통일부, 본연의 임무 망각한 셀프 현실주의
● 외교부, 통일 정책 백안시하는 셀프 비관주의
● 통일 염원, 시민단체의 순결한 이상주의로 부활
● 원코리아, 분단 시대의 행동하는 시대정신 돼야

8월 5일, 우리 국민은 안보 관련 부처의 후반기 업무보고에서 ‘이상주의에 대한 이상한 논쟁’을 지켜보며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4자회담 동력을 회복하는 기반의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 직후 조현 외교부 장관이 정 장관의 아이디어는 ‘이상주의’라고 직격했다. 조 장관의 ‘인색한’ 평가에 대해 정동영 장관은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꾼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현실주의자라고 강조했다.
관련 부처의 ‘한목소리’에 익숙한 국민 눈에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특히 안보 부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주기적으로 열어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 앞에서 보여준 안보 부처 장관의 논쟁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건강한가, 걱정스러운가. 평가의 잣대는 통일 과정에 기여적 논쟁인지 여부에 있다. 필자는 정부 논쟁을 ‘이상주의에 대한 이상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논쟁 자체가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좌절시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통일이라는 시대정신 시각에서 평가하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입장은 셀프 현실주의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셀프 비관주의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논쟁을 보면서 냉전시대를 걷어낸 레이건의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의 굵직한 역사적 목소리, 브란덴부르크 연설이 생각났다.
통일부 장관의 셀프 현실주의
정 장관은 대통령 보고를 통해 “공존 우선이 76.5%, 통일 우선이 11.8%”라고 했다. 여론조사 문항을 어떤 의도로 설계했고, 왜 2030세대에 해당되는 결과만을 보고했는지 짐작이 간다. 통일보다 공존을 2030세대가 바라고 있고, 그의 공존 구상이 여론과 찰떡궁합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현실주의적 입장을 강화하는 데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한 것이다.
아울러 논란이 돼온 북한 김정은의 두 개 국가론 극복과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며 △남북 관계 역사와 현실 부합 △북한의 불신 완화 △평화 최우선 △통일의 미래지향성 강화라는 4가지 정책 지침을 강조한다. 4가지 정책 지침에는 ‘북한 비핵화’가 행방불명이다.
정 장관은 북측의 두 개 국가론이 통일 열기를 암장시키는 한반도 현실 속에서 통일 논의를 유보하고, 공존을 비핵화보다 우선하는 입장을 스스로 ‘현실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논리로 대통령과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통일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공존 우선과 통일 우선 여론을 역전시켜야 하는 일이 아닐까. 통일 우선 여론을 76.5%로 만들고, 공존 우선을 11.80%로 만들려는 역사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통일 지향 여론을 임기 중에 어느 정도로 끌어올려 놓겠다는 의지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통일부의 존재 의미는 통일 의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은가. 실망이다.
외교부 장관의 셀프 비관주의
7월 15일부터 19일 사이에 강경화 주미대사가 귀국했다. 조 장관의 지시로 귀국했다는 공식 설명이었지만, 대사가 직접 귀국해서 설명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통신수단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내용이 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미 관계가 대단히 매끄럽지 않다는 반증이다. 한미 관계뿐 아니라 주변국 정세가 통일 환경이 악화하는 방향으로 바쁘게 재편되고 있다.
북측이 러시아에 추가로 병력 3만 명을 보내려 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역동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트럼프 정부로서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고민할 여건이 안 된다. 한반도 문제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부가 앞장서서 이전에 실패한 4자회담을 단기간 내에 복원시켜 북핵 문제와 한반도 공존·통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 난센스라는 것이 외교부의 판단인 것이다. 일면 이해는 간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민 앞에서 통일부 보고 내용을 공개적으로 면박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정 장관의 평화공존 구상이 1㎜라도 나가려면, 외교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 장관은 통일부의 정책 보고를 ‘이상주의적’이라고 평가하고, NSC를 통해 조율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지적했다.
외교부의 입장을 통일 정책과 연계해 보면 ‘셀프 비관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국제 정세 속에서 통일 논의가 우리 정부의 주변국 외교에 비집고 틀어갈 틈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원코리아’라는 순결한 이상주의
안보 관련 부처가 만들지 못한 통일을 향한 목소리를 시민단체가 만들어냈다. 8월 1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민단체 원코리아범국민연대는 ‘광복81 원코리아 통일전진대회’를 개최해 김정은의 두 국가론을 반대하고, 정부 일부 인사의 두 국가론 수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정대철 헌정회장 등 많은 정관계 인사 및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그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남북통일을 분단 시대의 시대정신, 진정한 광복정신으로 재천명했다. 외로운 목소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통일 관련 순결한 이상주의다. 통일 과정 역사에 큰 울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통일 환경은 최악이다. 북측 김정은은 통일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빙자해 북한 주민의 통일 염원을 체제 범죄로 다루려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상당수 역시 통일이 ‘행복 더하기’보다 ‘혼란 더하기’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를 품고 있다. 일부 정치인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통일불필요론’ 내지 ‘통일불가론’에 관심을 보인다. 필자는 ‘두 국가론 주창자, 동조자’들을 패배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생각한다.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에 이완용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현실주의의 길을 걸었다. 종국적으로 그들은 패배한 현실주의자가 됐다. 1930년대 일본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계사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지식인은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독립을 포기했다. 그러나 당시 윤봉길을 포함한 소수의 애국지사들은 독립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청년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그의 이상주의를 폭탄 투척과 순국을 통해 내외에 알렸다. 그의 이상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광복, 건국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 원코리아의 목소리가 윤봉길의 이상주의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수의 현실주의자와 소수의 이상주의자가 벌인 대결에서 이상주의가 이긴 역사를 우리 세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7년 6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독일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갈라놓고 있던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문 앞에 서서 역사적 연설을 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당신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하다면,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을 나오시오. 고르바초 선생, 이 문을 여시오. 고르바초프 선생, 이 장벽을 열어버리란 말이오(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이 짧은 연설이 구소련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열었다. 후일 레이건은 회고록을 통해 연설 직후 3년도 되지 않아서 붕괴된 브란덴부르크의 벽돌이 그의 도서관으로 배달될 줄 몰랐다고 한다. 레이건이 연설로 보여준 신념을 ‘행동하는 이상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레이건’식 ‘행동하는 이상주의’ 기대하며
필자는 국회의원 시절, 레이건의 두 번째 비서실장을 지낸 켄 듀버스타인(Kenneth M. Duberstein·1944∼2022)을 만나 브란덴부르크 연설 준비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연설 초안을 그가 만들었다고 했다. 그 당시 국무장관 등 참모들은 구소련과의 관계 악화를 걱정하며 연설 내용에 반대했다. 이에 레이건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연설문을 챙겨서 기습적으로 연설했다. 연설문에 담긴 메시지가 세계사를 바꿀 것이라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켄 듀버스타인은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으로서 연설문 원고를 만들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조언해 레이건의 결심에 영향을 끼친 일을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흐뭇해하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 지도자가 레이건식 ‘행동하는 이상주의’로 통일 대업에 다가가기를 대망해 본다. 셀프 현실주의, 셀프 패배주의적 비관주의를 넘어야 통일이 보인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원코리아(ONE KOREA)’ 운동에 진정성 있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분단 시대 지도자의 첫 번째 자격요건은 통일에 대한 관심, 열정, 영감이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 現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