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고급 세단의 기준을 묻는 질문만큼은 꽤 오랫동안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주인공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다. 경쟁사가 새로운 플래그십을 내놓을 때마다 "그래서 S클래스와 비교해 어떤가"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회장님 차'로 통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래된 권위는 그 자체로 숙제가 된다. 익숙함에 머물면 낡고 유행을 좇으면 S클래스다운 절제에서 멀어진다. 벤츠가 선택한 답은 대대적인 재설계였다. 현행 7세대의 부분변경 모델이지만 전체 구성 요소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약 2700개 부품과 기능을 새로 개발하거나 다시 설계했다. '부분'이라는 말이 무색한 변화다.
그래서 화려하게 얼굴을 바꾼 S클래스는 고급 세단의 기준을 지켰을까. 아니면 익숙한 품격 위에 장식만 덧씌웠을까. 이달 20일 강원도 영월에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S 450 4MATIC Long AMG Line'을 직접 몰아봤다.
멀리서는 정통 세단, 가까이서는 화려한 플래그십
멀리서 마주한 S클래스는 여전히 정제된 비례로 시선을 붙든다. 길게 뻗은 보닛과 완만하게 흐르는 지붕선,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측면은 정통 대형 세단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가까이 다가가면 절제됐던 실루엣과 달리 얼굴은 노골적으로 화려하다. 두꺼운 크롬 테두리를 두른 라디에이터 그릴이 전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안에는 작은 삼각별이 수놓듯 촘촘히 박혔다. 보닛 끝에 꼿꼿이 세운 입체 엠블럼부터 그 아래 원형 배지, 그릴 속 별무늬와 헤드램프의 트윈 스타 그래픽까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삼각별이 이어진다. 하나의 로고를 반복해 아예 디자인 질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범퍼 양쪽 공기흡입구를 감싼 크롬 장식과 빛을 잘게 쪼개는 멀티스포크 휠도 화려함을 보탠다.
과거 S클래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권위를 택했다면 이번 모델은 눈에 띄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S클래스 역사상 처음 적용한 그릴 조명까지 켜지는 밤이면 그런 성격은 더욱 선명해진다. 은근한 품격에서 화려한 자기 과시로 한 걸음 옮겨갔지만 적어도 한 번 본 얼굴을 잊기는 어렵다.
주행 완성도는 거대한 차체 움직임을 얼마나 정확하게 통제하는지에서 드러난다. 시승차에는 최고출력 381마력, 최대토크 57.1kgf·m의 3.0ℓ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9초가 걸리지만 체감은 수치보다 온순하다.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도 힘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고 일정하게 이어진다. 속도는 빠르게 높아지지만 탑승자의 몸을 앞뒤로 흔드는 불필요한 반응은 크지 않다. 강한 성능을 부드럽게 전달하는 것이 이 차가 택한 방식이다.
승차감 역시 단순히 '푹신하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의 존재를 지우기보다 충격이 차체에 남는 시간을 줄인다. 날카로운 요철을 지날 때 첫 충격은 느껴지지만 이후 잔진동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완만한 굴곡에서는 차체가 크게 출렁이지 않고 한 번의 움직임으로 자세를 정리한다. 편안함의 근거가 무른 설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2차 움직임을 억제하는 데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운전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자에게 전장 5305㎜의 차체는 출발 전부터 부담이었다. 긴 보닛 끝과 후미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며 좁은 길을 돌아나갈 생각부터 막막했다. 하지만 몇 차례 방향을 바꾸자 긴장은 금세 재미로 바뀌었다.
차체 크기를 지워준 것은 4.5도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다. 저속에서는 뒷바퀴가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꺾여 회전반경을 줄이고, 속도가 높아지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차체를 안정시킨다. 좁은 회전 구간에서도 후미가 바깥으로 크게 벌어지지 않고 앞부분을 따라 안쪽으로 말려 들어왔다. 운전대를 고쳐 잡으며 궤적을 수정할 일이 적었다.
운전이 재미있었던 이유도 빨라서가 아니라 '쉬워서'였다. 운전대를 돌린 만큼 차체가 지체 없이 방향을 바꾸고 뒷부분도 뒤늦게 끌려오지 않았다. 차가 운전 실력을 시험하기보다 서툰 조작을 조용히 지워주는 느낌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차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차가 왕초보를 제법 능숙한 운전자처럼 만들어줬다. 5.3m가 넘는 거구를 원하는 선 위에 정확히 올려놓는 경험은 묘한 자신감과 쾌감을 줬다.
고속에서는 그 자신감이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시속 150㎞를 넘어선 뒤에도 차체는 노면 위에 낮게 가라앉은 듯 흐트러지지 않았다. 운전대 중심은 묵직했고 차선을 바꿀 때도 좌우로 출렁이거나 후미가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체보다 계기판 숫자가 더 다급해 보일 정도였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운전자를 긴장시키는 차가 있는 반면, S클래스는 힘을 부드럽게 감춰 오히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게 했다.
'MB.드라이브 어시스트'도 부담을 덜어줬다. 카메라와 레이더, 초음파 센서 등 총 27개의 센서가 주변을 살피며 차간거리와 진행 방향을 조절했다. 차선을 벗어나려 할 때 운전대를 갑자기 낚아채기보다 슬쩍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앞차와의 거리도 급가감속 없이 유지했다. 운전을 대신한다기보다 실수할 여지를 줄여주는 조력자에 가까웠다.
초보 운전자에게 마지막 고비인 주차도 차가 맡았다. 화면에서 빈자리를 선택하자 시스템이 조향과 전후진, 속도와 제동을 모두 제어했다. 5.3m짜리 차가 스스로 몸을 접어 주차 공간에 들어가는 동안 운전자는 어색한 구경꾼이 됐다. 한 번에 밀어 넣으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전후진과 급제동은 적었다.
화면은 더 과감하게, 뒷좌석은 더 편안하게
실내에서 가장 큰 변화는 화면이다. 운전석과 중앙, 동승석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유리 패널 아래 연결한 슈퍼스크린이 대시보드 대부분을 차지한다. 화면을 실내에 끼워 넣은 수준을 넘어 대시보드 자체를 하나의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바꿨다. 음악에 맞춰 색과 움직임을 달리하는 액티브 앰비언트 라이트까지 더해지면서 나무와 가죽의 질감을 앞세운 전통적인 고급 세단보다 디지털 라운지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든다.
화면이 장식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은 한국형 디지털 생태계다. MB.OS 기반 최신 MBUX에는 티맵 오토를 비롯해 LG유플러스 '라이브TV+', 지니뮤직, 밀리의서재 오디오북, 웨이브와 멜론, 플로 등 국내 서비스가 들어간다. 스마트폰으로 따로 연결하던 내비게이션과 콘텐츠를 차량 안으로 직접 옮겨오면서 거대한 화면에 실제 쓸모를 부여했다. 이동 시간을 업무와 휴식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내 쇼퍼드리븐 수요를 겨냥한 구성이다.
이러한 변화의 효용은 뒷좌석에서 더욱 분명하다. S 450 4MATIC Long AMG Line부터 두 개의 뒷좌석 터치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MBUX 하이엔드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다. 영상 콘텐츠와 화상회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고, 터치식 리모컨으로 공조와 시트 등 차량 기능도 조작 가능하다. 전 라인업에 적용된 앞좌석 열선 안전벨트는 최대 44도의 온기를 제공한다.
아쉬움은 디지털 전환의 속도와 파워트레인 전략 사이의 간극에서 나온다. 국내에 출시되는 S클래스는 디젤·가솔린 엔진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한 구성으로, 외부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제외됐다. 순수전기 플래그십은 EQS가 별도로 맡고 있어 이번 S클래스는 여전히 내연기관 중심의 선택을 유지했다. 벤츠코리아 측은 "내연기관의 주행 감각과 넓은 트렁크 공간을 중시하는 국내 수요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