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대 500~600년 대물림해…생쥐실험 결과/ DNA 염기서열은 그대로이고, 질병 정보만 복사해 유전

임신 중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자녀 세대를 훌쩍 뛰어넘어 수백 년 뒤의 후손에게도 질병의 굴레를 씌울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팀은 임신 중 살균제 '빈클로졸린(vinclozolin)'에 노출된 생쥐에 나타난 변화를 추적 관찰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균제 등 독성 물질의 유전적 영향이 20대 후손에까지 미치며 세대가 거듭될수록 발생하는 질병이 점점 더 악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독성 물질에 직접 노출된 당사자보다 오히려 십수 대 뒤의 후손에서 비만, 콩팥병(신장질환), 전립선염 등 질병이 더 잦고 증상도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각종 질병이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후성유전학적 전이'를 꼽았다. 이는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끄는 조절 기능에 변형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신 중 각종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태아의 생식세포 내 DNA에 특정 화학적 표식인 메틸화 등의 흔적이 남게 된다. 이 변형된 유전자 발현 정보가 계속 복사되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연구팀은 초기 노출로 발생한 후성유전학적 불안정성이 세대를 거치면서 바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축적되거나 증폭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환경 독소에 대한 노출이 장구한 인류의 건강 자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 결과(Stability of epigenetic transgenerational inheritance of adult-onset disease and parturition abnormalities)는 최근 국제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렸다.
[자주 묻는 질문]
Q1.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질병이 생기나요?
A1. 유전자가 하드웨어라면 후성유전은 소프트웨어와 같습니다. 하드웨어인 DNA 서열은 멀쩡해도,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유전자 발현 스위치)에 오류가 생겨 잘못된 질병 정보가 출력되는 것입니다.
Q2. 20세대 대물림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인가요?
A2. 한 세대를 약 25~30년으로 계산할 때 20세대는 약 500~600년에 해당합니다. 이번 연구는 환경 독소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끈질기게 후손의 생체 시스템에 각인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Q3. 임산부가 실생활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A3. 태아의 생식세포가 형성되는 시기에 독소에 노출되면 그 영향이 고착화되기 쉽습니다. 농약 성분이 남은 채소나 과일은 충분히 세척하고, 플라스틱이나 화학 성분 등 환경 호르몬 노출을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이 후손의 건강까지 지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