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폭로와 자료를 통해, 장덕준씨의 죽음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쿠팡이라는 기업은 산재를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는가.노동자 한 명의 죽음에, 시가총액 40조원이 넘는 기업은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끔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건의 여파를 줄이고 어떻게든 기업과 수뇌부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2020년 10월12일,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망한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산업재해 사건이 5년이 지난 2025년 말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장씨의 사망이 확인된 후, 쿠팡은 내부적으로 총력을 동원해 장씨가 ‘열심히 일하지 않은 흔적’을 찾으려고 애쓴 정황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이 같은 정황은 지난해 12월 쿠팡 전 CPO(개인정보보호책임자)의 폭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사IN〉이 확인한 폭로 자료들에 따르면, 유족이 받아볼 수 없었던 장씨의 근무 영상을 쿠팡의 수뇌부는 분초 단위로 분석했고, 법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고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장덕준이라는 이름은 그간 과도한 플랫폼 노동 구조 속에서 안타깝게 희생된 인물 정도로 기억됐다. 그러나 새로운 폭로와 자료를 통해, 장씨의 죽음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쿠팡이라는 기업은 산재를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는가.
장덕준씨가 사망한 후, 쿠팡은 직원들을 동원해 장씨의 근무와 관련한 각종 기록을 조직적으로 검토했다. 쿠팡 내부에서 특히 중시한 증거는 장씨가 근무하던 사업장의 CCTV 영상이었다. 장덕준씨는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 7층에서 ‘워터 스파이더(Water Spider)’ 역할을 맡았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업무 특성상, 물류센터 내 각종 CCTV에 장씨의 모습이 찍혔다. 쿠팡은 당시 장씨의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확인하기 위해 당시 현장에 설치된 CCTV 가운데 총 8대를 선별한 뒤, 해당 CCTV 영상을 대구에서 서울 사무실로 옮겨와 하나하나 분석했다.
영상 분석에 동원된 직원들
쿠팡 수뇌부로부터 ‘장덕준 영상 분석’ 지시를 받은 쿠팡 직원들은 2020년 10월23일 금요일 오후부터 10월25일까지 장덕준의 업무 내역을 분초 단위로 쪼개며 살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쿠팡 수뇌부 측은 장덕준씨의 업무와 관련해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직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휴식 시간, 화장실, 간식, 흡연, 담소’ ‘작업 속도 및 강도’ ‘전화를 확인하는 시점’ ‘다른 근로자에 비해 이동·작업이 더 많았는지’ 등이다.
당시 업무 지시가 담긴 이메일 기록에는 언론에서 장씨의 죽음에 관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살펴볼 부분’을 이렇게 명시한다. ‘쉬는 시간도, 대화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임무였는지.’ ‘땀이 비 오듯 흐를 만큼 무거운 짐을 쉼 없이 날라야 하는 고하중 업무였는지.’
이렇게 모니터링한 내용을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직접 확인한 정황도 포착됐다. 2020년 10월25일, 김범석 의장과 전 CPO는 장덕준씨의 동선을 모니터링한 내용에 대해 대화했고, 해당 메신저 대화 내용이 지난해 12월 언론에 보도되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대화에서 김범석 의장은 일용직 노동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드러낸다. “그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기록이 없어야 한다!(Make sure no notes about him working hard are retained!)”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나!? 말이 안 된다!!!(Why would he be a hard worker!? That does not make any sense!!!)”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다! 시간당 급여를 받는다. 성과제 노동자가 아니다!(They are hourly workers! Paid per hour, not performance!)”(〈그림1〉 참조)
이 대화가 이루어진 다음 날인 10월26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다. 메신저 대화 속에서 김범석 의장은 전 쿠팡 CPO에게 국회를 직접 언급하며, 대문자와 느낌표를 섞어가며 이렇게 다그친다. “이것(장덕준 CCTV 분석 결과로 추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니다. 내일 아침 국회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This is not what we need. This is not going to help us in the National Assembly TOMORROW MORNING!)”
이 메시지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상당했다.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산재 사건 하나에 김범석 의장까지 나서서 은폐와 축소를 지시한 정황이 읽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5년이 걸렸다.
뒤늦게나마 여론이 움직였고, 쿠팡 수뇌부에 대한 고발도 뒤따랐다. 1월6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은 김범석 의장과 박대준 전 쿠팡 대표, 해럴드 로저스 현 쿠팡 대표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쿠팡 수뇌부가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 증거를 인멸하도록 교사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고발인 측은 특히 김범석 의장에 대해 “사업장에서 발생한 고 장덕준의 산재사고를 축소·은폐하고자 고 장덕준이 열심히 일한 기록은 삭제하고 휴게하거나 대기한 시간은 부풀리도록 지시하였다”라고 지적했다.
노조가 쿠팡 수뇌부를 경찰에 고발하며 ‘은폐’ ‘인멸’ 등을 주장하는 것은 쿠팡 전 CPO의 폭로 내용에 근거한다. 그가 폭로한 내부 이메일 내용에는 산재 관련 증거를 축소 보고하기 위한 다양한 언급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범석 외에, 이 과정에서 핵심에 있는 인물이 국회 연석 청문회 동안 쿠팡의 ‘얼굴’ 역할을 했던 해럴드 로저스 현 쿠팡 대표다. 장덕준이 사망한 당시 해럴드 로저스는 쿠팡의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General Counsel)을 맡고 있었다. 쿠팡 내부에서 ‘HL’로 지칭되는 로저스 대표는 당시 장덕준씨 사망과 관련한 대응 커뮤니케이션 라인에 직접 등장한다.
“몸에 무리 가는 일 아니라고 강조하라”
〈시사IN〉이 확인한 전 CPO의 폭로 내용 중에는 해럴드 로저스 대표가 당시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포함되어 있다(〈그림2〉 참조).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의 자료 요청과 관련된 이메일 스레드에서 해럴드 로저스는 이런 말을 남긴다. “업무가 수월하다는 점도 주요 포인트로 기재하는 게 좋지 않겠나?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으면 한다. 엑셀 데이터만 봐서는 그 부분이 잘 안 보인다(Shouldn’t we also indicate in the description important points on the ease of the job? Highlight the fact that this isn’t a job that creates strain—that isn’t clear in the Excel).” 이때 로저스 대표가 언급하는 ‘엑셀 데이터’란 장덕준씨가 맡았던 업무를 설명하는 자료를 의미한다. 이 부분은 공공운수노조가 경찰에 고발한 내용에도 포함되어 있다.
영상 분석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나타난다. 국회 쿠팡 연석 청문회 둘째 날인 지난해 12월31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10월23일부터 24일까지 쿠팡 직원들이 장덕준씨의 근무 영상을 확인하는 현장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100㎡가 넘는 공간을 통째로 사용해 일종의 특별 업무 공간을 확보했고, 이곳에서 10여 명의 인원이 각자의 컴퓨터를 이용해 장덕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모습이 찍혀 있다. 특히 강의실 화면에 띄운 일종의 ‘명령 문서’에는 각 직원이 몇 번 카메라를 담당하는지, 각 카메라의 위치가 어디인지, 당시 저녁 식사 시간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였는지 등이 하나하나 적혀 있었다.
직원들이 강의실에서 함께 본 컴퓨터 화면 오른쪽에는 날짜별 장덕준씨의 인상착의 사진이 떠 있다. 이날(해당 컴퓨터 화면에 비친 윈도 시계상 날짜는 2020년 10월24일) 쿠팡 직원들은 사진 속 장덕준씨의 인상착의를 참고해 마치 ‘형사’처럼 각자 맡은 CCTV에서 장씨의 모습을 찾아내야 했다.
이 화면에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총 6일간의 장씨의 모습을 화면에 띄워두었는데, 이때 각각의 날짜는 2020년 10월5·6·7·8·9·11일, 총 6일이었다. 장씨는 당시 10월11일 저녁에 출근한 뒤, 10월12일 새벽에 퇴근했고, 이후 자택에서 사망했다. 10월10일은 근무를 하지 않은 날이라는 걸 감안하면, 당시 쿠팡 직원들이 장씨가 사망 직전 근무한 모든 순간을 모니터링했다는 의미가 된다.
다수의 직원들이 일일이 기록한 장씨의 ‘행동 데이터’는 항목별로 합산되었다. 고발장에 첨부된 또 다른 사진 자료에 따르면, 쿠팡 직원들은 당시 장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총 8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분 단위로 기록했다. 일하는 도중 화장실을 몇 분 동안 갔는지, 업무 중간중간 동료와 대화를 나누거나 잠시 서 있는 시간은 몇 분이었는지, 업무 중에 물을 마신 시간은 몇 분이었는지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장덕준씨 행동을 분 단위로 분류하는 이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힌트를 제공하는 이는 다름 아닌 김범석 의장이다. 2020년 10월25일 쿠팡 전 CPO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김범석 의장은 세세한 행동 항목을 지시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Drinking Water, Waiting around/sign-in, Socializing/standing around, Moving empty totes/carts/jacks, At desk/checking PDA, Off camera/unaccounted for, Walking with no load, Bathroom(물 마시기, 대기/등록, 사담/비업무 대기, 빈 토트/카트/자키 이동, 데스크 업무/PDA 확인, 카메라 이탈/소재 불명, 빈손 이동, 화장실).”(〈그림1〉)
이때 언급된 카테고리는 실제 데이터가 수집된 카테고리와 유사하다. 당시 쿠팡 직원들이 ‘장덕준의 생전 일주일’을 김범석 의장의 의중에 따라 미세하게 들여다봤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다.
유가족은 보지 못한 영상
당시 다수의 쿠팡 직원들이 살펴본 CCTV 영상을, 유가족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장덕준씨의 어머니인 박미숙씨는 2023년 3월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쿠팡 측은 개인정보 및 영업비밀 보호를 내세우며 공단의 CCTV 영상 제공을 반대해왔다. 박미숙씨에게 2023년은 1년 내내 ‘아들의 영상을 제공해달라’고 호소한 시기였다. 2024년 1월, 법원이 근로복지공단에 문서제출명령을 내리고 나서야 박미숙씨는 아들이 나온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1년 동안 박미숙씨는 당시 확보한 영상을 보고 또 보며, 걸음 수를 세고, 아들 장덕준씨의 노동을 하나하나 살펴봤다(〈시사IN〉 제958호 ‘박미숙은 김범석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사 참조).
하지만 박미숙씨가 살펴본 영상은 쿠팡 직원들이 동원되어 살펴본 영상과 다른 영상이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제출된 영상은 9월17·20·29일, 그리고 10월1·5·11일 영상이었다. 쿠팡이 어째서 하필 저 날짜에 해당하는 영상을 공단에 제출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장덕준씨의 사망과 더 유관할 것으로 추정되는 핵심 기간(사망 전 일주일)은 유가족이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쿠팡 전 CPO의 폭로가 나오기 전까지, 유가족은 그날 영상 자료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쿠팡을 고발한 공공운수노조는 쿠팡 측이 CCTV 핵심 증거 자료를 은폐했다고 주장한다. 제공 영상의 날짜 문제 외에도 박미숙씨가 공단을 통해 확보한 영상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시간’과 ‘종류’다. 쿠팡 측은 영상을 공단에 제공할 때 지정된 업무 시간인 오후 7시~오전 4시를 칼같이 잘라내어 제공했다. 이렇게 되면 장덕준씨의 ‘초과근로’ 사실을 영상을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게 된다.
종류도 다르다. 쿠팡 측이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서울로 가져와 분석한 영상은 카메라 8대의 녹화본이었다. 하지만 쿠팡 측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CCTV 영상은 날짜별로 1~6개에 불과하다. 유가족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제한된 영상, 제한된 화각, 제한된 날짜, 제한된 움직임에 그쳤다. 증거자료 은폐로 볼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이후로도 추가적으로 새로운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2월4일 〈한겨레〉와 KBS 보도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 11월, 장덕준씨가 입사 이후 몸무게가 15㎏이 빠졌다는 지적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의 건강검진 내역에 담겨 있는 체중과 비만도의 변화를 보여주자고 논의하는 이메일이 공개되었다. 실제로 이 이메일 문의 후 건강검진 데이터를 쿠팡 내부자들이 활용해 열람한 흔적도 나왔다. 직원들의 건강검진 데이터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며,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되는 것 자체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
조직 내부자의 폭로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내용들이지만, 한계는 있다. 폭로된 내용은 그가 경험한 내용에 국한된다. 특정 현장에 참석했거나, 이메일이 오가는 중에 참조 형태로 스레드에 반영이 되거나, 혹은 직접 메시지 등을 나누었거나 한 경우 포착된 사실관계만 드러난 게 이 정도다. 장덕준의 사망에 대해 김범석 의장과 해럴드 로저스 대표, 박대준 전 대표가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얼마나 했고, 실제 어떤 지시와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아직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상태다. 결국 강제수사를 통해야 그 근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수사기관의 쿠팡 수뇌부 소환조사는 두 차례 진행됐다. 박대준 전 대표는 2월3일 경찰에 출석해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았고, 해럴드 로저스 대표는 1월30일 경찰에 출석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응 과정에서 당국과 협의하지 않은 채 증거물을 회수한 경위 등을 조사받았다. 로저스 대표에 대해서는 장덕준씨의 산재 책임을 축소·은폐하는 혐의 역시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지만, 수사기관의 추가적인 증거 확보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쿠팡 측은 이 모든 의혹이 제기된 ‘원천’에 대해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전 CPO의 폭로 자료에 대해 “회사의 정당한 해고 조치에 불만을 가지고 왜곡된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해럴드 로저스 대표의 국회 위증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