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발전단지가 들어설 때 발생하는 ‘공간적 갈등’을 연구한 다비드 필리프 루돌프 박사는 주민들이 ‘보상’의 대상이 아닌 에너지 전환이라는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한국도 지역에서 만드는 전기를 서울에서 ‘수입’해서 쓰지 않는가?” 다비드 필리프 루돌프 덴마크 공과대학교(DTU) 풍력 및 에너지 시스템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 물었다. 그는 2009년부터 재생에너지 발전단지가 지역에 설립될 때 발생하는 지역과 도시, 지역 내 주민들의 ‘공간적 갈등’에 주목해왔다. 스코틀랜드와 덴마크,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실증연구를 해온 그는 에너지 전환이 단지 연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시민들이 에너지 전환의 일부가 될 기회를 줌으로써 분배적·절차적 정의가 확산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월23일(현지 시각), DTU 리쇠 캠퍼스에서 다비드 필리프 루돌프 연구원을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한 회의실에는 60㎝ 높이의 ‘레고’ 풍력발전기가 놓여 있었다. ‘공간적 갈등’이란 무엇인가?공간을 기준으로 편익과 부담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하는 문제다.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는 주로 농촌과 해상 등 지역에 건설되지만 전기는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수출’된다. 대표적인 긴장의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지역 주민들은 각자의 ‘장소 애착’을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로부터 지역이 얼마나 손해 혹은 이익을 얻게 될지 다르게 판단한다.
장소 애착? 낯선 개념인데.자신의 장소(터전)를 잃는 상실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장소의 변화에 따른 ‘심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공간에 얼마나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설문조사를 비롯한 사회영향평가 등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주민들이 지역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풍력단지가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이라고 느끼는지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낙담과 저항 등을 조사한다.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의 결속력 등을 알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해상풍력 단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바다에 세워진다면 문제는 없을까?흔히 먼바다에 풍력단지를 건설하면 수용성에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육상에서 이루어지는 송전망 건설 같은 계통 연계 시설공사, 항만 확장 공사 등으로 사람들이 ‘나의 지역’이 달라진다고 느낀다. 즉, ‘장소 애착감’이 영향을 받는다. 큰 규모의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설 때 입지 장소, 발전기의 수, 발전기의 배치 등 아주 초기 단계부터 주민들을 개입시켜야 하는 이유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나?스코틀랜드 서해안 작은 농촌 섬 앞에 해상풍력 단지를 세우려고 한 경우가 있었다. 이 사례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지역 주민 참여의 중요성. 둘째는 주민마다 다른 장소 애착감이다. 이곳은 일자리 부족, 주변화, 공공서비스 감소, 청년층 이탈 같은 농촌의 대표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해상풍력 단지가 생긴다고 하니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지역에 변화가 생기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주를 해서 섬에 들어온 주민들은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원했다. 그래서 지자체와 시민, 개발사가 함께 ‘시나리오 매핑’이라는 과정을 시작했다. 풍력단지를 건설하고 운영·유지·보수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것이 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토론한 것이다. 주제는 주민들의 삶의 질과, 교육·공공의료 인프라에 미칠 영향, 농업에 생길 변화 등이다. 경제성 때문에 결국 개발사가 프로젝트를 철회했지만 주민들을 에너지 전환의 파트너로 존중한, 초기 개입이 잘 된 사례였다.
계통 건설에 따른 갈등은 한국에서도 큰 문제다.흔한 문제 중 하나다. 영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큰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개발되는 곳인데 공청회 과정에서 편지와 의견서를 받아보면 대부분 풍력단지 자체보다 육상 공사와 계통 연결을 문제 삼는다. 2021년 영국에서 일어난 ‘노퍽 뱅가드(Norfolk Vanguard)’ 사례는 주목받은 계통 갈등 사례다.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주민이, 계통 연결선의 매립이 필요한 해상풍력 프로젝트 때문에 자신의 땅이 여러 차례 파헤쳐질 수도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개발사들이 계획된 프로젝트들의 누적 환경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발전소 건설 허가를 취소했다. 소송을 제기한 주민은 “마침내 주민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발전단지의 인프라 개발이 일반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초기 개입 외에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주민도 지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이익공유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지분에 투자할 여력이 되는 사람만 참여해 가난한 사람은 배제되거나, 농촌 등 주변화된 지역의 주민들은 투자보다 급하게 써야 할 지출이 있기도 하다. 일부 개발사들은 이런 제도를 적극 홍보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자체와 주민들에게 ‘지역사회 편익금’을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사례가 있다. 부정적인 것을 메워주는 ‘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편익’이란 단어를 썼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편익금은 무엇인가?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초기에는 건설에 따른 일자리가 생기지만 운영·유지·보수 단계에는 경제효과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사회 편익금’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지역에 지속 가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성격을 갖는다. 특히 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과정에 지역민이 참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 스스로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요구할지 결정한다. 환경을 개선하거나 지역의 문화를 살린 사업를 펼칠 수도 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보상으로 수용성을 높이는 방식 같다.그렇다. 그런데 나는 ‘수용성(acceptance)’이라는 단어를 바꿀 수 없을까 궁리한다. 주민들이 프로젝트를 ‘수용’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님비(NIMBY) 같은 이기주의 때문에 ‘수용성이 낮다’는 식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 마치 사람이 장애물인 것처럼, 해결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편익·부담에 대한 분배의 정의와 민주적인 절차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경관의 변화, 생활방식의 변화, 지역의 가치 변화 등에 대한 각자의 이유와 논리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유의할 점은,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려한 것이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혹은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답해주어야 한다. 사람을 ‘문제’로 낙인찍지 말고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프로젝트 안에 담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지역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 노력, 돈이 들지만 초기부터 노력을 기울이면 반드시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