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저〉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1740년 영국은 라이벌 제국 스페인과의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그해 9월, 전함 다섯 척의 소함대가 전투를 위해 포츠머스에서 출항했다. 장교와 수병 250명을 태운 웨이저호(號)도 그중 하나였다. 웨이저호의 한 승조원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몇 년 뒤 적의 재화를 싣고 영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들떴다.”
길고 긴 원정 항해는 예상과 달랐다. 제국보다 무서운 건 열병과 폭풍우였다. 출항 전 배 안에 잠복했던 발진티푸스라는 ‘박테리아 폭탄’이 항해 중에 터졌다. 얼마 지나서는 괴혈병이 퍼졌다. 당시에는 채소·과일 섭취 부족으로 비타민 C가 결핍돼 생기는 병이라는 걸 몰랐다. 거센 폭풍이 더해졌다. 소함대가 흩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배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웨이저호도 난파했다. 파타고니아의 외딴섬으로 표류했다. 섬에 도착해보니 250명 중 145명만 살아남았다. 먹을 게 부족한 섬에서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과연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책의 3부 ‘표류자’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뉴요커〉 전속 작가로 활동한 지은이는 286년 전 사건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서문에서 그는 ‘몇 년에 걸쳐 문서의 파편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고 썼다. “파도에 휩쓸려온 항해일지, 나달나달 썩어가는 서신, 절반의 진실이 담긴 일기, 문제가 많은 군사재판의 기록 중 보존된 것들”이다. 서문의 첫 문단에서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섬에서 살아 돌아온다. 생존자의 기록이 있으니 지은이가 책을 쓸 수 있었을 테니. 그런데 군사재판의 기록이라니. 섬에서 군사재판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예감케 했다.
취재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오래된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썼지?’ 하고 감탄했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선원 중 일부는 특정한 목적으로 일지를 썼다. 영국에 귀환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재판 대비를 위해 ‘모험기’를 출판했다. 그 기록을 샅샅이 읽은 지은이는 방대한 사료와 문학적 서사를 정교하게 결합했다. 과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영화화 판권을 구입할 만했다. 블록버스터 영화로 도착하기 전, 먼저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