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물류센터가 도시 외곽이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 들어오는 추세다. 화재가 난 인천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 반경 500m 안에는 66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물류센터는 왜 이곳에 들어섰을까.7월18일 인천 서해구 석남동에 자리한 쿠팡 32물류센터 6층에서 불이 났다. 2025년 창고업체로 등록해 운영되던 이곳은 연면적 29만9300㎡ 규모의 지상 8층 ‘메가 물류센터’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창고 내부는 ‘거대한 서가’처럼 1.3m 좁은 간격으로 물건이 꽉 찬 선반이 들어차 있었고 포장재와 비닐 등 가연물도 가득했다. 리튬 배터리를 탑재한 물류 이송 로봇 수백 대도 아래층에 보관돼 있어 열폭주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며 화재 진압이 이어졌다.
마지막 불길을 잡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화재 발생 109시간 40분여 만인 7월22일, 최종 진화가 완료되면서 석남동 물류센터 화재 사건은 국내 물류센터 화재 중 발화부터 완진까지 역대 두 번째로 긴 시간이 걸린 화재 사건으로 기록됐다. 진화까지 국내 최장 시간이 소요된 화재 사건은 2021년 6월 발생한 경기 이천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다.
덕평 물류센터와 이번에 화재가 난 석남동 물류센터 사이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하나 있다. 인근 거주지와의 거리다. 이천 덕평 물류센터에는 2021년 기준 반경 500m 안에 387명이 거주했다. 반면 석남동 물류센터는 가장 최신 통계인 2024년 자료에 따르면 반경 500m 안에 6605명이 산다.
상층이 시꺼멓게 타버린 석남동 물류센터 바로 뒤에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공원과 원룸, 빌라촌, 초등학교 등이 있었다. 불탄 거대 물류센터는 층고가 낮은 빌라촌 골목 바로 뒤에 시야를 가로막으며 우뚝 솟아 있었다. 석남동 물류센터는 지상 8층 규모이지만, 층고가 높은 물류센터의 특성상 높이가 일반 건물 15층 정도에 해당한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이루어지던 장보기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전·확산한 세태를 반영하듯 대형 물류센터 역시 도시 외곽 물류단지가 아닌 마을로, 동네로, 생활의 터전 안으로 들어오는 추세다.
8월4일 석남동에서 20여 년간 공인중개사를 해온 주현영씨(가명)를 만났다. 그는 나흘 전 초등학교 안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 6시, 이른 아침 화재가 시작된 만큼 주씨는 당시 화마가 건물을 집어삼키던 모습을 내내 지켜봐야 했다. 그때의 충격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했다. “여긴 고령의 원주민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재개발도 안 되는 가난한 곳이다. 쿠팡 물류센터랑 너무 가까이에 집들이 붙어 있어 아직도 집 안에 그을음이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웃들이 있다. 화재 전문 입주 청소를 맡긴다고 하는데 비용을 쿠팡에서 지원해줄지 모르겠다. 주민들 병원 치료비는 대주겠다고 말은 했는데 그건 또 어떨지···.” 골목 곳곳에 A4 용지를 인쇄한 ‘쿠팡 피해지원 접수 안내’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주현영씨와 골목에서 자영업을 하는 40대 거주민 정혜선씨는 석남동 물류센터 입주 계획이 알려졌을 당시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반대한 상황을 떠올렸다. 석남동 주민들에게 공장 같은 공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갯벌과 물길, 염전을 메워 만든 매립지인 석남동은 1960년대 후반 SK인천석유화학의 전신인 정유회사 ‘경인에너지개발’과 1970년대 초반 경인화력발전소 등이 세워졌던 곳이다. 오랫동안 공장과 논밭, 인부들의 사택과 농막이 초라하게 세워진 인적 드문 싼 땅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석남동은 주거지역과 준공업 지역이 섞인 공간이 되었다. 마을 식당과 카페에는 가족 단위 주민들만큼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많았다. 주민들의 정주 공간과 공업지역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은 석남동이 “인천에서도 땅값이 저렴한 동네”인 이유가 됐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형 물류센터가 유치될 수 있었을 거라고 주현영씨는 짐작했다.
주씨는 쿠팡 물류센터 입주를 반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가 공장지대라고 해도 정유 시설을 빼면 대부분은 작고 영세한 곳들이다. 그런데 저렇게 큰 물류센터가 생기는 건 너무하지 않나. 새벽부터 대형 차량들이 오가면 소음에, 교통도 혼잡해지고 매연까지 심한데. 아파트 주민들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커지니까 쿠팡에서 그런 곳엔 보상 명목으로 돈도 주고, 다른 지역 물류센터에 견학도 데려갔다. 공청회도 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을 고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렇게 온갖 설득을 거쳐 저 건물이 들어섰다.”
초등학교 옆에 대형 물류센터?
거대한 도심형 물류센터는 항만이나 공항 근처 물류창고와 다른 기능을 한다. 이곳은 수출입 화물을 적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새벽에’ ‘총알같이’ 소비자의 집 앞에 물건을 배송하는 허브(Hub)다. 과거 물류 시설의 목표가 창고에 쌓인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비용을 줄이는 데 있었다면, 상품의 입고·보관·포장·배송·교환·환불 등을 모두 처리하는 대형 물류센터 중심의 물류 서비스는 자동화·대형화·적재방식 효율화 등 최첨단 기술을 통해 물류의 흐름을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최근 늘어나는 대형 물류센터는 도시 외곽의 대형 물류센터에서 도심 내 소형 배송 거점으로 물품을 이송하는 업무를 대체한다. 주문 빈도가 높은 지역과의 인접성은 치열한 e커머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는 핵심 역량이다.
대형 물류센터는 여기에 특정한 조건이 추가된다. 저렴한 땅값이다. 인천연구원 김운수 교통물류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내 도심들을 지원하는 데 이점이 있는 일부 지역에 대형 물류센터가 들어선다. 마치 부동산 투자처럼, 자산운용사들이 지가가 낮은 땅을 구입해 건물을 세우면 물류업체들은 이곳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물류센터를 운영한다”라고 설명했다. 임대 방식으로 물류센터가 입점하기 때문에 한번 쿠팡 물류센터로 이용된 건물이라고 해서 장기적으로 같은 용도로 쓴다는 보장은 없다. 물류업체가 떠나도 빈 대형 건물은 지역에 그대로 남는다. 유령처럼 남은 건물은 마을의 ‘깨진 유리창’이 되기도 한다. 주민들이 마을에 대해 갖는 애착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심형 대형 물류센터가 들어서는 또 다른 조건 중 하나는 ‘허술한 규제’다. 2025년 특별한 조례 개정안 하나가 발의됐다. ‘경기도 물류창고 난립으로부터 안전한 정주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김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물류센터를 포함한 물류창고와 거주지 사이 이격거리를 최소 400m로 정하는 등의 기준을 담은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고 도의회를 통과했다. 경기도 31개 시군은 물류창고 설립 허가 기준을 두지 않거나, 마련해도 그 기준이 통일돼 있지 않았다. 이러한 행정적 공백을 이용해 주거지 인근까지 물류창고가 들어서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김동영 의원은 〈시사IN〉과 통화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의 경우 아파트와 냉동 물류창고 간 이격거리가 ‘단 30m’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형 트럭들이 커브를 돌 수 없을 만큼 거리 폭이 좁은 곳이었다. 게다가 바로 앞에 학교와 문화시설이 있어서 많은 주민이 오가는 곳이었다. 이런 시설이 너무 쉽게 들어서고 어떠한 제재도 없더라. 문제는 이런 곳들이 인허가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거나 정비되지 않은 곳, 그중에서도 땅값이 싸고 민원을 결집하기 어려운 곳 중심으로 세워진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이 도심 물류의 배후 지역으로 낙점되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물류센터는 지역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약한 곳에 더 쉽게 터전을 잡고 들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주민의 힘으로 직접 물류센터의 입주를 막아낸 사례도 있다. 2025년, 인천 검단신도시에 들어설 예정이던 물류 시설 입점이 백지화됐다. 2022년 인천 서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검단 물류유통3부지에 물류 시설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해당 부지 주변에는 약 3700세대 단지의 아파트와 초등학교·유치원 등이 인접해 있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사업에 반대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을을 마을답게 만들기 위해 반대한다”
2005년부터 인천 검단신도시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주경숙씨는 주민들과 민원을 넣고,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이른 새벽 수송로에서 거리 시위를 하며 물류시설 건립을 반대했다. 주씨는 “이곳 검단구가 수도권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지였기 때문에 검단 주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결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답답하고 화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이웃과 만나 같은 뜻을 모으다 보니 함께 살고 싶은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물류 시설을 만든다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 단순히 일만 하고 왔다 가는 사람들 위주로 바뀐다는 의미더라. 그들의 일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그 넓은 부지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는지가 우리 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주경숙씨는 도시마다 저마다의 공간적 ‘특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류창고 건립이 무산된 터에는 마을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이게 하고,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곳이 생기면 좋겠다. 대단히 큰 기대는 아니지 않나?”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주씨는 행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에 관심이 많아 지역 마을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는 마을에 물류센터가 들어서는 것이 ‘마을을 마을답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도 이천 등 쿠팡 물류센터에서 5년간 일한 최효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사무장은 과거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본 커다란 현수막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파트 앞 사거리에 물류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 내가 일하는 곳이 사람들에게 혐오시설이 된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 물류센터에서 취급하는 생활용품, 신선식품을 이용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류센터는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루는 곳이고, 노동자들은 그것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물류 노동에 대한 터부가 물류 시설 혐오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주민들의 삶의 공간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대형 물류센터는 자동화와 비대면 소비라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어쩌면 가장 현대적 건축물이다. 이러한 도심형 대형 물류센터에 대한 입점 기준과 안전 규제가 허술한 가운데 ‘커다란 네모 상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2024년 글로벌 유통기업 아마존이 지역과 지역민,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마존은 미국을 서로 다른 종류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서열과 소득, 목적을 부여했다. 이는 미국의 지리적 풍경뿐 아니라 기회의 풍경도 변모시켰다. 사람들 앞에 놓인 선택지, 즉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는지가 달라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아마존 디스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