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중립은 힘이 세다


김성해 지음, 개마고원 펴냄
“과거 70년 동안 해온 것처럼 미국만 믿고 따라가면 될까?”
‘한반도의 중립’을 말하면 “우리 현실에 안 맞다” “미국이 동의하겠는가” 등 냉소적 반응이 나오곤 한다. 대구대에서 미디어와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저자는 미래의 처방전으로 중립을 말한다. 흔히 비현실적 논의로 치부되지만, 중립 논의는 구한말 외세의 각축 와중에 불거진 조선의 중립화론을 시작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미·소 양국에서 모두 한반도 중립화의 아이디어가 제기된 바 있다. 저자는 중립국·중립 공간·중립 외교 등의 개념과 범위를 꼼꼼히 검토한다. 중립이 무엇이고, 가능한 모델인지 등을 설명한다. 특히 북한이 언제, 무슨 이유로 중립에 관심을 가졌는지 살핀다. 우리 사회에 아직은 낯선 ‘중립’에 대한 본격 ‘사용 설명서’다.

웃는 흉터


김보나 글, 난다 펴냄
“기억에 남는 건 노래뿐이야, 너랑 노래 부르는 순간은 다 좋았어.”
여름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데에 여름 책을 읽는 것만큼 적합한 일은 없다. 시인 김보나가 8월1일부터 31일까지 여름을 즐기기 위한 이야깃거리를 빼곡히 채워왔다. 록 페스티벌에 가고 요가로 몸을 단련하는 한편, 어느 뜨거웠던 시절 배운 민중가요를 흥얼거리며 작열하는 태양 빛에 맞서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암으로 아픈 몸, 뺨에 남은 흉터, 타인에게 입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김보나는 그것들을 회복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손’으로 다시 부른다. 내리쬐는 태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31가지 이야기 중 8월8일 ‘따라 부르는 노래’를 추천한다.

맹렬한 허기


캐런 바빈 지음, 이주혜 옮김, 녹스 펴냄
“더는 아프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흔적이 생겼다.”
에세이스트이자 교육자인 캐런 바빈의 어머니는 어느 날 희귀 자궁암 진단을 받는다. 캐런 바빈은 어머니가 항암 주사를 맞고 음식을 삼키지 못할 때는 구운 닭으로 국물을 만들어 기력을 채우고, 마음 달랠 음식을 찾으면 몰트오밀이나 토스트 등을 침실로 가져갔다. 사골 육수와 소고기찜 같은 낯선 요리를 하며 ‘육식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운다. 번역가 이주혜의 말처럼 ‘앓는 일은 외롭다. 앓는 이를 돌보는 일 역시 못지않게 외로울 수 있다. 이 외로움은 자신의 고통을 앞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한층 복잡해지기도 한다.’ 요리와 음식을 통해 질병을 통과해온 작가가 삶의 ‘맹렬한 허기’를 구체화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김희경 지음, 웨일북 펴냄
“싱글맘인 정은경은 대화를 마치며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어 안심이 되었다’라고 했다.”
돌봄을 이야기하면서도,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은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돌봄은 손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운영하는 일이다. 돌봄을 위해 병원 예약을 하고, 복지제도를 찾아보고, 식단을 짜고, 일정을 조정한다. 이런 일은 오랫동안 이름이 없었으나 연구진에 의해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끝없는 정신적 과정이 비로소 ‘기획 노동’이라 명명되었다. 저자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맞벌이 부부, 부모 돌봄을 떠안은 자녀, 장애아 부모, 장애인 당사자 등 21명의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돌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획 노동’이 있었다. 이 책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겨졌던 돌봄을 사회문제로 다시 묻는다.

자유의 역설


올랜도 패터슨 지음, 김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자유는 구원과 기독교적 삶을 실천하는 데 따른 가장 큰 보상이었다.”
사실 ‘자유’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이 개념과 관련된 확실한 사실은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자유 개념의 창안자를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파격적 주장은 그 믿음을 뒤집어버린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는 근대가 아니라 고대의 노예들로부터 발생했다. “자유는 노예와 비노예 모두에게 지독히 비인간적 조건이었던 상황을 부정하려는 노예의 절박한 갈망 속에서 사회적 가치로 그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유를 세 가지 측면, 즉 ‘국가의 강압으로부터 자유’ ‘공동체의 통치에 참여하는 시민적 자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주권적 자유’로 이루어진 화음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시각도 흥미롭다. 모두 중요한 자유다.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박혜수 지음, 돌베개 펴냄
“우리는 늘 누군가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누군가’가 돼야 했다.”
‘퍼펙트패밀리’는 저자가 2019년 시작한 가상기업 예술 프로젝트다. 가짜 가족을 빌려주는 내용의 회사 서비스 카탈로그와 광고물 정도가 애초 구상이었다. 개인이 아닌 가족을 중심에 두고 굴러가는 각종 제도의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픽션은 자주 다큐가 되었다. 각자 다른 결핍과 소망을 품고 가족 렌털을 의뢰하러 오는 관객 참여는 작품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사연은 미술관 안팎을 넘나들며 상황극이, 퍼포먼스가, 라이브 필름이 되었다.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빌리고 싶어 하는 가족은 누구였을까? ‘완벽한 나’였다. 해당 작품이 포함된 박혜수 개인전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가 8월7일부터 10월18일까지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