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타원형 잎사귀의 여기저기가 둥그렇게 잘려나가 있다. 벌레가 파먹었다기엔 단면이 너무 깔끔하다. 마치 가위로 오려낸 것 같달까?
‘가위벌’이 지나간 자리다. 잘라낸 풀잎을 재료로 집을 만든다고 한다. 사과꽃을 수정시켜 사과가 열리게 하는 이로운 곤충이기도 하다. ‘이런 벌도 다 있구나’ 생각할 때쯤 조수정 대표(52·왼쪽)와 이흥식 박사(59)는 계속해서 곤충의 흔적을 발견했다. 도라지꽃 근처에선 구리꼬마꽃벌을 찾아냈고, 단풍나무 아래에선 말벌의 일종인 왕바다리를 잽싸게 잡았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시사IN〉 사무실 건물의 마당에 나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못해도 수백 번은 지나다녔을 회사 앞 화단에 이처럼 작고도 다채로운 세계가 숨어 있었다니.
두 사람은 야생벌을 관찰하고 지키는 시민과학 모임 ‘벌볼일있는사람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조수정 대표는 사실 “곤충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2013년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 가족 자연탐사 프로그램이 변화의 계기였다. “‘꿀벌과 밀원식물 기록하기’라는 미션이었는데 제가 가족 내에서 기록 담당이었거든요. 원래는 벌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났어요. 그래도 제가 담당이니까, 용기를 내서 꽃에 앉은 벌 가까이로 가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거예요.” 벌에 호기심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집 근처며 한강이며 다니는 곳마다 벌이 눈에 띄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벌들은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이 커졌다. 포털 이미지 검색으로 벌의 종류를 하나씩 찾아보며 3년간 독학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벌 연구’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던 도중 ‘2017 바이오블리츠 코리아’에서 이흥식 박사를 알게 되었다. 곤충학과 분류학을 전공하고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연구관으로 일하는 이 박사는 당시 국내 유일한 ‘꽃벌 연구자’였다. 지금은 석사과정을 밟는 젊은 연구자가 있어 한 명이 더 늘었다. ‘바이오블리츠 코리아’는 국립수목원 주관으로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24시간 동안 특정 지역을 조사해 생물종을 기록하는 생물다양성 탐사 프로그램이다. 2017년 이 행사에 ‘벌목 탐사대’로 참여한 인연이 2018년 ‘벌볼일있는사람들’ 설립으로 이어졌다.
‘벌볼일있는사람들’은 야생벌과 시민들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서울환경연합과 매년 ‘유니벌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곤충 전문가와 탐방을 다니며 야생벌에 대해 배우고, 하반기에는 각자 사는 곳에서 벌을 관찰해 시민과학 온라인 플랫폼 ‘네이처링’에 그 기록을 남긴다. 호박벌의 경우, 기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물지표종으로 호박벌이 얼마나 관측되느냐에 따라 기후위기의 진행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벌의 종류는 4800여 종에 이른다. 어떤 벌들은 특정 식물의 수분만을 옮긴다. “지구상에 꽃 피는 식물이 번성하게 된 것은 꽃가루를 먹고 사는 곤충과 꽃 피는 식물 사이 공진화의 결과예요. 어떤 종류의 벌이 없어지면 그 식물도 없어지고, 그 식물이 사라지면 그 벌도 없어집니다(이흥식 박사).” 벌을 관찰할 때는 조심하는 자세가 기본이지만, 벌집을 건드리거나 공격적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쏘일 위험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조수정 대표에 따르면 “벌들 역시 인간처럼 ‘봉생’을 살기에 바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