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사람은 때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전부를 내걸 수 있다. 신념을 바탕으로 모이고 싸우고 목숨까지 던진다. 그런 결단과 투쟁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1980년대가 그랬다. 나 역시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과정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거나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 그들에게 늘 죄송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신념도 절대적 진리는 아니었다. 나는 ‘생각’만큼은 쉽게 바꾸면 안 된다고 여기는 편이다. 과거의 윤리와 희생까지 송두리째 모욕할 수 있는 재주(?)의 소유자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나는 당시의 신념에 어긋나는 사실·논리와 끊임없이 충돌했고, 나름 열심히 맞서 싸웠다.
이기기도 했다. 더 많이 졌다. 그 결과인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당시의 내 인식은 무지하고 부족했다. ‘변혁’의 지침으로 삼기엔 터무니없이 허술했다. ‘우리’가 꿈꾼 체제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는 군부독재와 재벌에 맞섰지만 그 싸움은 세상을 ‘왼쪽’으로 견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가 확장되고 시장경제가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감히 ‘역사의 간지(奸智)’가 작동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과거에 ‘믿음’을 가졌던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상의 자유와 정보가 엄격히 통제되던 당시의 조건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의 대안을 찾고 싶었다. 그때 생각 가운데 ‘내 안의 싸움’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합리적 핵심’들만큼은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흔히 ‘좌파’로 불리는 ‘5(6)86 정치인’ 중 일부가 독선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한 세대 전체가 민주화의 훈장을 밑천 삼아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는 식의 묘사는 내가 살아온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아는 대다수는 ‘생활 전선’에서 힘겹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년이다. 당시 입은 정신적·육체적 상처 혹은 스스로 포기한 진로의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는 사람도 많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19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아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살아갔다. 존경하는 선배나 친구가 공장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것을 보았을 때, 혹은 그중 누군가의 다단계 가입 권유를 거절해야 했을 때 느낀 처절하고 비참했던 마음은 지금도 잊기 어렵다. 다음은 당시 세월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되었던 노래극인 ‘러시아에 관한 명상’의 한 구절. “우린 이러다가 흘러가는 강물 위에 그냥 달빛처럼 또 흘러가는 것 아니겠냐고. 그래도 좋지 않겠느냐고. 아름다운 것이 되면 좋지 않겠느냐고.”
그럴 수만 있으면 좋겠다. 강물 위 달빛처럼 흘러가기. 그것이 세상의 순리임을 받아들이기. 그래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