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XMT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삼분하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상장과 동시에 중국 본토 증시 1위로 등극한 이 기업의 성장 공식은 어딘가 조금 독특하다.최근 중국 주식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한 반도체 기업이 상장과 동시에 중국 본토 증시(A주)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LG·현대차 등 민간 대기업 집단이 시장을 이끄는 한국 증시와 달리, 위안화로만 거래되는 내국인용 중국 A주 시장은 4대 국유은행이나 페트로차이나 같은 거대 공기업이 최상단에 자리해왔다. 그 사이를 비집고 민간 반도체 기업이 1위 자리를 꿰찬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D램 설계와 생산을 통합한 종합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이야기다.
CXMT는 7월27일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과학기술주 전용 시장인 ‘커촹반(중국판 나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 8.66위안(약 1870원) 대비 466% 급등한 49위안(약 1만580원)으로 마감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라는 기대감에, 상장 후 첫 5거래일 동안 가격제한폭이 없는 커촹반의 특성까지 더해져 투자가 몰렸다. 회사는 당초 목표액이던 295억 위안(약 6조2000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최대 666억 위안(약 14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상장 10일째인 8월5일 기준 CXMT의 시가총액은 3조6300억 위안(약 766조원)을 기록했다. 중국 현지 언론은 CXMT가 “글로벌 반도체의 전통 강자인 미국 인텔의 시가총액(8월5일 기준 약 724조원)마저 넘어섰다”라며 크게 보도했다.
2016년에 설립된 CXMT는 중국 내 최대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CXMT가 상장 전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투자 설명서에 따르면, CXMT는 현재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12인치 웨이퍼(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원판) 기반 D램 공장 두 곳과 베이징에서 공장 한 곳을 가동 중이다. 주력 상품은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에 흔히 쓰이는 ‘범용 D램’인 DDR(Double Data Rate)과 LPDDR(Low Power Double Data Rate) 제품으로, 2025년에는 두 제품이 전체 매출의 98% 가까이를 차지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바이트댄스, 텐센트,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주요 고객사다.
D램 시장 점유율로 보면 CXMT는 ‘메모리 3강’에 한참 못 미치는 4위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오랫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하는 3강 체제를 유지해왔다. 홍콩 기반의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9%), SK하이닉스(26%), 마이크론(25%) 순으로 기존 3강 체제는 여전했다. 하지만 4위인 CXMT가 추격해오는 속도가 매섭다.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3%에서 올해 2분기 7%로 두 배 넘게 올랐다.
CXMT의 시장점유율이 상승한 것은 글로벌 경쟁사들이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을 확대하면서 그 반사이익을 흡수한 결과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다. 삼성·SK·마이크론 등 선두 업체들이 AI 가속기 핵심 부품이자 범용 D램보다 가격이 4배 이상 높은 HBM 생산에 라인을 대거 배정하면서 PC나 모바일에 쓰이는 범용 D램 공급에 공백이 생겼다. 2025년 하반기 D램 수급에 병목이 생기고 단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자, 범용 D램 생산에 집중하던 CXMT가 이 반사이익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CXMT는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설립 이후 10년간 누적적자가 366억 위안(약 7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 CXMT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19% 폭등한 508억 위안(약 10조7000억원), 1분기 순이익은 1688% 늘어난 247억 위안(약 5조2000억원)이다. 중국 현지 언론 〈증권시보〉에 따르면 이는 1분기 커촹반 나머지 600여 개 상장기업의 순이익 합계보다도 높은 수치다.
10년을 기다린 산업
CXMT의 성장 과정은 곱씹어볼 구석이 많다.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초미세 공정을 수행할 첨단기술과 값비싼 장비 투자가 필수인 기술·자본 집약적인 산업이라서다. 신규 진입자에게 불리한 반도체 시장에서 CXMT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CXMT의 탄생에서 허페이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CXMT 본사가 자리한 허페이시는 유망한 기업에 대규모 지분을 투자해 유치한 뒤 관련 공급망 생태계를 공장 주변에 통째로 조성해주는 ‘벤처 투자형’ 행정, 이른바 ‘허페이 모델’로 유명하다. 허페이 모델의 성공 사례로 디스플레이 기업 징둥팡(BOE), 전기차 기업 니오(NIO) 등이 있다.
2016년 허페이시는 반도체 팹리스 기업 기가디바이스를 창업한 주이밍 현 CXMT 회장과 손잡고 CXMT를 설립했다. 중국산 D램 양산을 목표로 하는 이 ‘506 프로젝트’에 들어간 초기 투자금 180억 위안(약 3조7800억원)의 80%를 허페이시가 출자했다.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반도체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대기금’도 합류해 CXMT에 자금을 보탰다. 그렇게 허페이시는 10년간 CXMT의 성장을 기다리는 동시에, 단계적으로 지분 비율을 낮춰왔다. 투자 설명서에 따르면 현재 허페이시 국유자산위원회는 산하 펀드들을 통해 직간접으로 CXMT 지분의 약 36%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CXMT의 기술적인 모태는 독일 기업 ‘키몬다(Qimonda)’다. 한때 세계 D램 4위였으나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파산한 기업이다. CXMT는 2019년 키몬다의 특허 자산을 보유한 캐나다 기업 폴라리스 등과 정식 거래를 맺어 기술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2018년 푸젠진화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의 반도체 기업인 푸젠진화가 마이크론의 기술을 무단 유출하려다 미국 상무부의 제재 목록(엔티티 리스트)에 올라 무너졌다. 타이완의 싱크탱크인 ‘과학기술·민주·사회연구센터(DSET)’는 이 사태로 CXMT가 기술을 빼오는 방식의 위험성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푸젠진화 사건을 계기로 CXMT가 꾸준히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결과, 2019년 말 중국 최초의 자체 설계 D램 양산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CXMT가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다른 논란도 있다. 중국 대학들이 광학계 기술을 축적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 인재를 영입하는 일에도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CXMT는 설립 초기부터 타이완 반도체 산업의 숙련된 인재를 영입했고,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도 주요 타깃이 됐다. 국내에서는 한국 기업의 D램 기술을 CXMT에 넘긴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실형을 선고받는 등 기술 IP 유출 사건이 누적되고 있다.
모방할 수 없는 성장 공식으로 매섭게 추격해오는 후발 주자는 존재 자체로 위협적이다. CXMT는 지금 어디까지 쫓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서는 꽤 명확한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먼저 D램을 양산하는 공정 세대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D램 공정은 1x·1y·1z·1a·1b·1c 순으로 미세화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c(6세대) 공정으로 D램을 양산하지만, CXMT의 주력 공정은 아직 1z(3세대) 단계로 알려졌다. 3세대 정도 거리가 있는 셈이다. 반면 더 복잡한 기술력이 필요한 HBM에서도 3~5년의 격차가 뚜렷하다. 각 사의 HBM 생산 로드맵을 비교하면 CXMT는 2026년 HBM3(4세대), 2027년 HBM3E(5세대) 진입을 목표로 한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 이미 HBM4(6세대)를 양산하고 있다.
정치·외교적 변수도 CXMT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안보 문제로 치환되면서, 미국의 수출규제가 CXMT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네덜란드 기업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전면 차단해왔다. EUV는 차세대 HBM을 생산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장비로 여겨진다. 여기에 더해 CXMT는 미국 국방부 블랙리스트 ‘1260H’에 등재돼 있어 미국 기업들로부터 부품 조달을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 주어진 시간은 ‘무한’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중앙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 펀드 ‘국가직접회로산업투자대기금’을 2014년부터 5년을 주기로 총 세 차례에 걸쳐 조성했다. 펀드의 규모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CXMT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도 확실해 보인다. CXMT는 이번 기업공개(IPO)로 조달한 자금 중 295억 위안(약 6조2000억원)을 D램 기술 고도화와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전액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신규 공장들이 모두 가동되면 생산능력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와중에 중국 내 여타 반도체 기업도 잇따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낸드플래시(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양쯔메모리(YMTC)도 올해 안에 중국 본토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역설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촉진했다면, 이런 제재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할지 의문이 남는다. 〈반도체 삼국지〉를 쓴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시사IN〉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식 제재는 유효기간이 있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가 말한 ‘유효기간’은 기술 격차가 버티는 시간을 뜻한다. “그 유효기간은 대략 3~7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간은 미국의 EUV 수출 통제로 인한 병목을 버텨주는 시간이다. 앞으로 통제의 한계효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 메모리 기업들이 상대적 기술 우위를 넉넉하게 유지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국영 장비업체 ‘상하이 아이성나’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이 노광장비를 국산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또 한번 깨졌다. 권석준 교수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예측은 지금까지 계속 틀려왔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중국의 현재 추세로 보면 2030년대 초에 저출력 EUV 등장은 충분히 가능하나, 그것이 경제성이 있는 양산 장비가 되는 것은 또 다른 5~10년의 문제다. ASML처럼 연간 50~100대씩 공급하는 것은 그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한국에 주어진 시간창이 ‘무한’이 아니라 10~15년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이 격차를 압축해온 역사가 있다. 방심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