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트렌드를 알려면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튜브 컨설턴트이자 〈슈퍼 유튜버〉 공저자인 주힘찬씨가 주목할 만한 ‘요즘 유튜브’를 소개합니다.올여름 유튜브에서 가장 뜨거운 신인은 1961년생 프랑스어 강사다. 인하대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 학생들 앞에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조금 웃었다. 이름은 정일영.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인하대에서만 28년을 강의했지만 전임교원이 아닌 시간강사였다. 마흔 권 넘는 책을 쓰고 EBS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지만 쉰다섯 무렵엔 교수 자리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한다. 지난 7월 그는 자신이 80학번으로 입학한 바로 그 학교의 초빙교수가 됐다.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침착맨’이라는 유튜브 채널이다. 웹툰 〈이말년 씨리즈〉를 그리던 만화가 이말년이 손님을 불러 몇 시간이고 잡담을 나누는, 구독자 약 322만명의 채널이다. 2024년 여름 정일영의 첫 출연 영상 제목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상황이었다.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파리 올림픽을 앞둔 때였고, 현지에서 바가지 쓰지 않는 법 같은 실용적인 이야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붙잡은 건 인물이었다. 그 편집본은 800만 회 넘게 재생됐다.

언어학 박사인데 말투는 거칠고, 스스로를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라면서 누구보다 앞에 나선다. 그 거침없는 입담이 실은 이방인으로 프랑스에서 버티려고 익힌 생존술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교수인데 자기 실패담을 먼저 웃음거리로 내놓고, 광고를 많이 찍어 돈 버는 게 목표라며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학생 앞에서는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 훈계하지 않는 예순의 어른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만나보았나.
한 시청자는 댓글에 “2030 성공 신화는 리센느, 6070은 정일영 교수님”이라고 적었다. ‘사다리가 걷혔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는 사회에서, 뒤늦게 도착한 성공담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더구나 그는 버틴 세월을 훈장처럼 내세우지도, 부끄러워 감추지도 않는다. 그냥 재료로 쓴다. 그렇게 시청자는 ‘60대인데 도파민이 터지는 인물’ 정일영을 발견했다.

낯선 인물에게 시청자가 빠져드는 순간


정일영 교수의 인기가 폭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침착맨이 있다. 침착맨의 핵심 자산은 유명인을 섭외하는 능력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을 ‘발굴’하는 능력이다. 유명한 사람을 부르면 이미 만들어진 관심을 빌릴 수 있지만, 그 관심은 끝내 그 사람의 것이지 채널의 것이 아니다. 반면 쌓인 전문성과 사연은 있는데 아직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먼저 알아보면, 그 사람의 변화가 곧 채널의 역사가 된다.
정일영 교수는 침착맨 채널에서 발견됐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을 받았으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채널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침착맨 채널 출연 이후, 약 2년 동안 자신의 삶이 바뀐 뒤 다시 돌아와 그 결과를 이야기했다. 시청자에게 그는 출연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지켜본 사람이다. 형식과 주제는 어느 채널이나 복제할 수 있지만, 함께 통과한 시간은 복제되지 않는다.

한 시청자는 ‘교수님의 퍼스널 컬러는 침착맨’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정확한 말이다. 이 채널은 그에게 없던 캐릭터를 입힌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전문성과 모순·욕망·낭만이 드러날 무대를 내줬을 뿐이다. 침착맨 채널에 출연해 ‘최고민수’라는 별명을 얻은 주식투자 전문가 박민수 작가도 비슷한 경우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유튜브 채널의 진짜 자산은 일회성 조회수가 아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을 먼저 알아보고, 그 사람의 서사를 시청자와 함께 키우며, 관계와 네트워크를 얼마나 두껍게 축적하느냐에 채널의 성패가 달려 있다. 낯선 인물에게 시청자가 빠져드는 순간, 그 채널만의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세계관을 가진 채널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