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양쪽에서 두 개의 AI 서밋이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은 공급망의 길목을 다졌고, 상하이에서 중국은 새로운 규범 기구를 세웠다. 하나는 분배를, 하나는 진영을 겨냥한다.2026년 8월, 우리는 새로운 개념 하나와 마주한다. ‘기정학(Tech-politics)’이다. 영토를 둘러싼 지정학, 공급망과 자본을 다투는 지경학 위에 이제 기술 주권이 안보와 국부를 가르는 기정학이라는 세 번째 층이 얹힌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인터넷이 정보혁명을 열었듯이, 첨단기술이 만드는 이 세 번째 층은 문명사적 전환의 신호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도시에서 그 신호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7월24일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AI 핵심 거점국’으로 선언했다. 젠슨 황(엔비디아), 샘 올트먼(오픈AI), 다리오 아모데이(앤스로픽), 혹 탄(브로드컴)이 앉은 자리에 이재용(삼성전자), 최태원(SK), 정의선(현대차), 이해진(네이버) CEO 등이 함께했다. 한국 기업과 미국 빅테크 간의 양해각서가 줄줄이 이어졌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행사였다.
그보다 며칠 앞선 7월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홉 번째 대회 만에 처음으로 직접 참석했다. 중국 정부가 주최한 이 행사의 메시지는 하나였다. 인공지능은 특정 국가의 ‘독주’가 아니라 세계가 함께 연주하는 ‘교향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을 주최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쥐고 있는 확실한 카드 때문이다. 지금 AI 산업의 발목을 잡는 최대 난제는 ‘폰 노이만 병목(Von Neumann Bottleneck)’이다. 연산장치는 비약적으로 빨라지는데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통로가 좁아, 결국 계산 장치가 데이터를 기다리며 공회전하는 현상이다. 이를 물리적으로 뚫을 유일한 열쇠가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한국은 이 시장의 80% 이상을 쥐고 있다. 이 지위를 ‘초크포인트(Chokepoint)’, 혹은 공급망에서 빠지면 전체 체계가 멈추는 ‘린치핀(Linchpin)’이라 부를 수 있다. AI 패권을 쥔 미국 빅테크조차 한국의 생산능력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냉전기 상호확증파괴(핵무기를 통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에 비견될 만한 이 비대칭적 의존이, 미국 빅테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팽팽한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
같은 시기 상하이에서는 다른 카드가 나왔다. 상하이에 본부를 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설립 협정에 29개국이 서명했다. 시진핑 주석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AI 전문 인력 5000명 연수 계획을 제안했다. 기상예보 AI ‘마조’를 30개국에 적용해 기후변화와 재해에 대응하겠다는 구상도 나왔다.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의 문법은 전혀 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은 한·미 빅테크 결합으로 공급망의 축을 다지며 ‘대체 불가능한 생산 거점’을 겨냥했다. 상하이에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를 결속해 WAICO라는 규범체제를 세우고, 이를 발판 삼아 미국 주도의 기술 블록화에 맞서려 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글로벌 사우스를 끌어안는 정치·규범적 우산을 구축했지만, 한국은 누구도 우회할 수 없는 하드웨어와 응용 인프라를 쥔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 파트너’를 자임한다. 중국은 AI 2강으로서 규범을 만드는 자리에, 한국은 반도체 핵심 공급국으로서 공급망의 길목을 지키는 자리에 서 있다. 두 자리에 절대적인 우열은 없다. 다만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면 전환기의 거센 변동성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이 구도는 각자의 언어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시진핑 주석은 ‘사람 중심’과 ‘선을 향한 기술’을 내세워 미국의 독점적 기술 봉쇄를 비판하고 다자간 협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줄 하나로는 소리를 낼 수 없고,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라는 옛말을 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술의 성과가 특정 계층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로 퍼지는 ‘AI 기본사회’를 제시했다. 연설을 미국 시트콤 〈프렌즈〉 주제곡의 한 대목(서로가 곁에 있어주기에 함께할 수 있다는 취지)으로 맺은 것도 상호 신뢰와 동반자적 연대를 강조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한국의 ‘글로벌 AI 허브’와 중국의 ‘WAICO’는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AI 격차를 메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 문제의식을 담는 그릇이 다르다. 중국의 사람 중심 가치는 미국 중심 질서의 불평등을 겨냥한 거시적·반패권적 담론에 가깝다. 한국의 AI 기본사회는 AI가 만드는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교육·의료 같은 보편적 기본권으로 되돌리자는 분배 모델이다. 하나는 진영을, 하나는 분배를 겨냥한다.
중국이 주도한 WAICO는 하루아침에 나온 기구가 아니다. 2023년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 2024년 ‘상하이 선언’을 거쳐 2026년 국제기구로 제도화됐다. 유엔 보고서가 지적하듯, 첨단 AI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남반구는 여전히 크게 뒤처져 있다. 중국의 답은 명료하다. 최고 성능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성능의 AI를 값싸게,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 이를 가능케 했고, 태양광·풍력 발전설비의 급속한 증대가 필요한 전력을 뒷받침했다. 2025년 1월 딥시크 R1의 등장은 이 생태계에 기름을 부었다. 신용카드도, 구독료도, 까다로운 정치적 조건도 없는 AI 접근성, 이것이 중국이 남반구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문턱 없는 접근은 공짜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 역설과 반전이 담겨 있다. 미국이 첨단 모델에 정치적 조건을 달아 문턱을 높이는 사이, 중국은 문턱을 없애는 대신 출구를 좁혔다. 문턱 없는 접근은 공짜가 아니다. 중국의 기술 표준과 인프라에 깊숙이 편입되는 또 다른 형태의 종속이자 의존이다.
한국과 중국의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겹치며 부딪친다. 두 나라 모두 글로벌 사우스를 주무대로 삼고 AI를 공공재로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주도 질서에 맞서는 대안적 거버넌스로 WAICO를 구상하는 반면, 한국은 미국 중심의 빅테크 공급망에 깊이 결속돼 있다는 점에서 출발선이 다르다. 한국은 AI를 ‘공공지능’으로 규정해 공적개발원조(ODA)와 묶고, 저개발국의 의료·교육·빈곤 문제를 실질적으로 푸는 데 목표를 둔다.
한국은 분명한 강점이 있다. ‘포용성과 혜택의 보편적 공유’라는 규범은 기술 패권 다툼에 지친 신흥국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소프트파워다. 여기에 K컬처 종주국의 위상이 더해지면 그 힘은 배가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지정학적 압박을 느끼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한국은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매력적인 파트너다.
한국이 ‘글로벌 AI 허브’를 통해 확보해야 할 핵심은 다자주의적 정당성이다. 이는 장기 국가발전전략의 토대가 될 것이다. 개도국과의 기술 격차를 메우는 일방적 시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쥔 ‘대체 불가능한 인프라’의 지위를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각국의 언어·문화·산업 환경에 맞게 자생적으로 작동하는 기후변화, 재해·재난, 보건의료 특화 AI가 자라날 협력 허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중국이 짜고 있는 생태계와 한국을 명확히 가르는 차별점이다.
한국이 짜야 할 ‘판’의 설계도
실행은 세 층위에서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부 층위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먼저다. 아시아·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테스트베드를 골라, 점에서 시작해 면으로 넓혀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중국이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라는 넓은 면을 처음부터 동시에 공략하는 것과는 차별화된 접근이다.
기업 층위에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단기 상업적인 수익을 넘어, 글로벌 사우스와 신흥국의 기후·보건·재해 인프라 결핍을 한국의 AI와 제조 역량으로 메우는 B2G(기업-정부 간 거래) 모델을 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민간 층위에서는 ‘풀뿌리 데이터 주권’을 실험해볼 만하다. 지역사회 기반 협동조합이나 커뮤니티 거버넌스가 지역 밀착형 보건·재난 데이터를 스스로 모으는 방식이다. 기후위기와 재난, 보건 비상 상황의 1차 대응은 언제나 현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민간 공동체가 지역 취약계층의 위기를 AI로 살피고 안전망을 세우는 주체로 나설 여건을 만드는 것은 ‘AI 기본사회’라는 규범을 지역 차원에서 실천하는 길이다. 동시에 신흥국으로 퍼뜨려야 할 우리 전략의 핵심축이다.
마지막으로 AI 안보도 빠뜨릴 수 없다. AI는 경제성장의 도구일 뿐 아니라 국가 생존을 가르는 신안보 전략 그 자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며, 이것이 곧 우리의 평화 신전략이 되어야 한다.
첫째, 치명적 무력 사용의 최종 판단을 기계에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군사 영역에서 ‘인간의 유의미한 통제’를 국내법과 군 교리에 명시하고, 핵·미사일 지휘통제 계통에서 AI를 배제하는 규범을 국제 의제로 적극 주도하는 것이다. 둘째, 남북 간 AI 기술 격차의 안정적 관리다. 격차가 벌어질수록 상대는 비대칭 수단에 기대게 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국가발전전략의 무거운 부담과 안보 비용으로 돌아온다. 남북 AI 격차를 관리하는 일은 한국이 군사 AI 통제 논의를 국제 무대에서 이끄는 도덕적·지정학적 지렛대이기도 하다. 이 신안보 전략을 한국이 앞서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리는 글로벌 AI 허브에 다가가는 가장 모범적인 길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순한 기술 추종자에 머물지 않는다. 압도적인 하드웨어 초격차와 ‘AI 기본사회’라는 포용적 규범을 결합하면 AI 시대 새로운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제안할 수 있다. 한국의 위치와 역할에 부합하는 ‘기정학적 린치핀’으로 도약할 발판을 다져야 한다. 상하이와 샌프란시스코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분명한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