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질린 암호화폐 시장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기술 혁신만큼이나 치열한 규제 논쟁 속에서 성장해왔다. 거래소 파산과 스테이블코인 붕괴 등 숱한 위기 속에서 시장은 늘 ‘합법성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이제 그 경계를 명확히 그을 ‘암호화폐 시장 구조화법(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이하 클래리티법)’이 미국 의회에서 입법의 마지막 관문을 두드리고 있다.
입법 시계는 급박하다. 최근 미 재무장관이 “올봄 내 처리”를 강력히 주문하면서, 다가오는 3월이 법안 통과의 최대 분수령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상원 농업위원회가 클래리티법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상품 중개기관법’을 가결하며 첫 단추를 끼웠지만, 이어진 백악관 회의에서 은행권과 업계는 핵심 쟁점인 ‘스테이블코인 보상’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은행 측은 암호화폐 플랫폼이 규제 없이 이자 성격의 보상을 지급할 경우 은행 예금의 대규모 이탈을 유발해 금융 시스템 안정을 해칠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업계는 보상을 막으면 미국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경쟁력이 도태되고 이용자 혜택이 축소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에 백악관은 “이달 말까지 절충안을 제시하라”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 역시 이번 봄을 놓치면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8월 이후에는 물리적으로 법안 처리가 어렵다”며 “늦어도 올해 2분기 안에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즉, 2월 말 합의와 3월 상정, 2분기 통과라는 타임라인이 지켜져야만 연내 법제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논쟁은 이미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을 증권으로 규정하며 소송을 제기한 이후 “암호화폐는 증권인가 상품인가”라는 논쟁이 본격화됐다. 2022년 테라·루나 붕괴와 FTX 파산은 규제 필요성을 정치권 의제로 끌어올렸고, 2024년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제도권 편입이 시작됐다. 클래리티법은 이러한 논쟁의 종착점이 될 수 있는 첫 종합 입법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는 법안 통과 시 암호화폐 시장에 강력한 반등 모멘텀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핵심은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 자산을 ‘디지털 상품’으로 명확히 규정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독하에 두는 것이다.
박승두 한국가상자산법학회 회장은 “클래리티법을 통해 비트코인의 법적 성격이 상품으로 확정되면 불필요한 규제 리스크 해소로 거래 안정성이 높아지고,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규제 명확화와 기관 자금 유입이 2026년 디지털 자산 시장의 회복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자산운용사 비트와이즈 또한 “법안 통과 시 스테이블코인 및 실물자산 토큰화(RWA) 등 신시장 성장 경로가 확실해져 전반적인 랠리가 찾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