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 패권 전쟁
미국과 중국의 용호상박으로 전개 중인 글로벌 인공지능(AI) 대전에서 유럽과 일본이 생존을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달 들어 기존 AI법(AI Act)에서 범용 AI와 대규모언어모델(LLM), 생성형 AI의 투명성 의무 관련 추가한 조항을 적용해 세계 AI 규제의 중심지임을 선언했다. 조항에 따르면 세계 모든 기업이 EU에 출시하는 생성형 AI는 이제 사진·동영상·음성·텍스트 등 AI가 만들거나 조작한 콘텐트에 워터마크·메타데이터 등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표시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한다.
공익 전달을 위한 콘텐트도 마찬가지이며, 이용자가 챗봇 등으로 AI와 상호작용할 때도 상대가 사람이 아닌 AI라는 사실을 알도록 고지해야 한다. 또 연산 능력과 범용성이 뛰어난 산업용 프런티어 모델 개발사는 자사 AI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평가하고 안전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험 결과와 사고 발생 현황도 EU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규정을 위반한 기업에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으로 기업 연매출의 최대 7% 또는 3500만 유로(약 590억원)를 부과할 수 있다. EU는 2021년 세계 최초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 기준인 AI법 초안을 마련한 뒤 2024년 최종안에 합의하고 공식 시행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미·중 AI 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는 내용으로 향후 미·중 AI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EU가 AI 규제 강국의 지위를 굳건히 해 세계 AI 시장에서 주도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유럽 AI 기업은 EU의 규제 강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입지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업 간 거래(B2B)를 하는 프랑스의 AI 개발사 미스트랄AI는 지난 4일(현지시간) 생성형 AI에 대한 유해 콘텐트 판정 기준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소형 안전 모델을 공개, 기업용 AI 시장 공략 강화에 나섰다.
일본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마련한 제2기 AI 산업 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특정 분야 전문 AI인 버티컬 AI, 그리고 로봇 등의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일본이 제조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피지컬 AI 영역에 대한 지원을 거듭해 이른 시일 내에 글로벌 중심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미·중에 대한 AI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프랑스·영국 등 유럽 내 우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인도·브라질 등 신흥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이 신흥시장에 고성능 AI를 수출하고 있지만 기밀 데이터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본 기업 AI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사업 속도도 높이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도쿄와 홋카이도에 이어 오사카에서 세 번째 AI 데이터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소프트뱅크의 클라우드·AI 부문 매출은 올해 4~6월 771억 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해 수익 실현 단계에 들어섰다. 아키야마 오사무 소프트뱅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회계연도에 클라우드·AI 부문 매출이 30% 성장해 당초 전망치인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