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하락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지고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는 여론조사가 공개된 날 이 대통령이 ‘개헌’을 말했다.
이 대통령은 14일 오후 X(옛 트위터)에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변경하여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며, 지방자치와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헌하자는 것이 저의 공약이자 지금까지 일관된 저의 입장”이라며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국민적 수용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지 7시간 45분 만에 직접 개헌 관련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선 청와대 브리핑은 전날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 대통령과 7월 초 골프 회동 사실을 공개하며 “(대통령이 당시) ‘내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해야 된다’라고 했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추진을 찬성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한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공교롭게 전날에 이어 이날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전화면접조사에서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터였다. ARS(자동응답) 조사와 달리 전화면접조사에선 그동안 긍정 평가가 높았으나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에선 부정 평가가 더 높게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4%로 부정 평가(46%)를 밑돌았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선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직전 조사였던 7월 4주차에 비해 7%포인트 하락했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부동산 정책’ (30%)이 가장 많았고 ‘경제·민생·고환율’(13%), ‘전반적으로 잘못한다’(7%), ‘검찰 권한 축소’ ‘독재/독단’(각 5%)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정부의 부동산세제 개편안이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45%가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한 반면 긍정적 영향을 예상한 응답은 24%에 그쳤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잘된 일’이라는 평가는 27%에 그친 반면 ‘잘못된 일’이라는 평가는 50%였다. 특히 20대(30%)와 30대(37%), 70대 이상(35%)에서 이 대통령의 긍정 평가가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이 대통령이 이날 청년정책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200분간 직접 간담회를 주재한 배경이다.
부정평가 이유 ‘부동산’ 가장 많아…“수사권 폐지 잘못” 50%
그러나 이날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압도적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개헌’이 됐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약을 언급한 수준이라고 했지만 여권 내에서도 의도를 궁금해하는 시선이 있다. 친명계 인사인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2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2027년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내년을 개헌의 적기로 꼽았다가 한발 물러선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 개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연임 개헌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 사이 유시민 작가가 “연임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가능한 것처럼 전제하고, 그것을 조국·문재인·유시민·김어준이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문이라고 찍어 버린다”라고 반발한 일도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개헌은 국회 200석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헌 합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게 대통령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개헌으로 돌파하려는 ‘탈옥형 개헌’의 시도”(정점식 원내대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 “국민의힘이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는 이 대통령이 개헌과 국가 개혁을 명분으로 국민의힘 일부와 손잡고 새로운 정치연합을 만드는 것”(12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이라는 주장까지 나온 데다 이 대통령과 국민의힘 다선 의원들의 골프 회동 소식까지 전해진 터라 야당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장동혁 대표도 페이스북에 “분권형 개헌은 ‘연임 불가’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썼다. 정 원내대표는 “개헌에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국민 앞에 나와서 ‘연임은 없다’ ‘당장 재판받겠다’는 약속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정략적 개헌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여당에서도 개헌론이 불거진 시점을 두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느닷없이 개헌론이 튀어나와 당황스럽다”며 “국민의힘 의원 10명이 개헌에 동참하기로 확약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냐. 안 그래도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개헌은 무슨 개헌이냐”고 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는 개헌이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고 하지만, 그 중심이 돼야 할 국회의장의 ‘연임 개헌’ 발언으로 사실상 동력이 상실된 상태”라며 “불씨를 살리는 길은 대통령이 먼저 임기 연장용 개헌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전달해 야당이 논의에 참여할 길을 우선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교수는 “개헌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집권 2년 차 대통령에게 개헌은 썩 반갑지 않은 이슈라 실제 개헌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취임 1년 2개월여 만에 발생한 이 대통령의 첫 데드크로스는 윤석열 전 대통령보다는 늦지만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른 편이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약 2개월 만인 2022년 7월, 박 전 대통령은 약 1년 4개월 만인 2014년 6월, 문 전 대통령은 약 1년 7개월 만인 2018년 12월 처음으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