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여전한 늦더위, 주말에는 비 소식. 8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무더위는 물러갈 기미가 없고 불안정한 대기로 인한 비까지 예보되면서 야외 활동은 이래저래 애매해진다. 이런 여름 끝자락, 사람들의 휴가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도심 속 원스톱 ‘몰캉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IFC몰과 지하로 연결된 호텔 콘래드 서울. 밖은 찜통더위였지만, 회사원 정이수(33)씨는 반팔 카디건을 걸치고 매장 사이를 여유롭게 오갔다. "원래 여름휴가는 바다 아니면 산이었는데, 요즘은 뭐하러 땀 흘리면서 나가나 싶어요. 쇼핑하고 밥 먹고 호텔에서 수영하고 자고 오면 그게 휴가죠." 정씨는 콘래드 서울에서 하루를 묵으며 IFC몰 쇼핑과 호텔 내 수영장, 스파까지 한 번에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이틀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아요. 이번 주말엔 비까지 온다는데 더 잘됐죠."
콘래드 서울은 IFC몰과 지하로 바로 연결돼,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쇼핑과 문화·엔터테인먼트를 한 동선에서 즐길 수 있다. 더현대 서울까지도 실내로 이어져 있어 여의도 일대를 날씨 걱정 없이 돌아볼 수 있다. 호텔 내 '펄스8'에서는 25m 실내 수영장과 피트니스·사우나를, '더 벨 스파'에서는 전문 스파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어 쇼핑과 미식, 웰니스가 한 공간에서 완성된다. 장마철에는 우비를 입은 콘래드 베어 인형과 제습제, 호텔·IFC몰 추천 동선을 담은 안내문을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등 계절에 맞춘 세심한 서비스도 눈에 띈다.
콘래드 서울 관계자는 "최근 폭염과 장마로 실내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려는 고객들이 증가하면서 쇼핑과 미식, 웰니스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몰캉스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며 "IFC몰과 직접 연결된 접근성과 다양한 호텔 시설, 계절에 맞춘 세심한 서비스로 여름철 가장 쾌적한 도심 휴식을 선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유통·여가업계의 화두는 단연 이런 '몰캉스'(Mall+Vacation)로 대표되는 실내형 휴가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잦은 장마로 야외 활동 대신 실내에서 쇼핑과 미식, 체험을 한 번에 즐기려는 수요가 늘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쇼핑몰은 여름철 고객 체류 시간이 평시보다 20% 이상 늘었다. 예전엔 점심시간대 잠깐 들렀다 가는 손님이 많았다면, 요즘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머무는 경우가 늘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바뀌는 여행·유통 구조 이런 흐름을 두고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단순히 폭염 때문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온라인으로의 구매 유입이 커지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사활을 걸고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펴왔다"며 "지금의 몰캉스 붐은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 일종의 보상을 받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온라인 구매가 줄어든 것은 아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구매가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함께 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여행의 형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예전엔 정해진 휴가철에 맞춰 계획을 세워 멀리 떠나는 여행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금·토·일처럼 짧게 다녀오는 즉흥적인 일상 여행이 훨씬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몰캉스는 이동 없이 쇼핑과 휴식, 먹거리를 한 공간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는데, 이게 최근의 여행 트렌드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며 "폭염이라는 계기 이전에, 유통구조와 여행 행태가 함께 바뀌는 구조적인 변화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내 복합 여가 인기
강남 코엑스몰의 코엑스 아쿠아리움처럼 쇼핑몰과 결합된 대형 수족관도 여름철 대표 실내 명소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650여 종, 5만여 마리의 해양 생물을 갖춘 이곳은 시원한 실내에서 하루를 통째로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트·가족 나들이 코스로 꾸준히 인기다. 경기 하남의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자리한 '아쿠아필드'는 실내외 워터파크와 8가지 테마의 찜질스파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어, 물놀이부터 휴식까지 하루 일정을 통째로 실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번 주말 예보된 집중호우처럼 궂은 날씨가 이어질 때는 이런 실내 여가 수요가 급증해 인기 시설은 사전 예매가 필수일 정도로 붐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예년보다 길어진 폭염과 잦은 장마로 외부 활동을 줄이고 실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호텔도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쇼핑과 미식, 문화, 웰니스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라운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창밖으로 흐려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행기표 알아보다가 성수기 가격 보고 그냥 접었어요. 근데 막상 이렇게 해보니까 이동 시간도 없고, 비 와도 걱정 없고, 나름 만족스럽더라고요."
올여름, 휴가지의 기준은 '어디로 가느냐'에서 '얼마나 편하게 머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