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나뭇잎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주황빛 실잠자리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커다란 두 눈으로 마치 창문 밖을 내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2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BMC 생태학 및 진화학'과 'BMC 동물학'이 공동으로 개최한 2026년 사진 공모전 수상작을 공개했다. 생태학·진화생물학·동물학 연구자들이 연구 현장과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출품하는 공모전이다. 올해는 '자연 속 관계', '지구 보호', '연구 현장' 등 세 부문에서 수상작을 선정했다.
● 습지로 난 창문전체 우승작 '습지로 난 창문'은 인도 오디샤주 발라소르 지역의 담수 습지에서 촬영된 주황꼬리실잠자리(학명 Ceriagrion cerinorubellum) 사진이다. 인도 베르함푸르대 학생 스리탐 쿠마르 세티가 촬영했다. 나뭇잎에 자연적으로 생긴 구멍을 통해 실잠자리가 얼굴을 내미는 순간을 포착했다.
실잠자리는 습지에서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자다. 성충은 물가에서 쉬거나 사냥·번식하고 유충은 깨끗한 민물에서 자라야 한다. 물과 육지 환경에 모두 의존하기 때문에 오염이나 습지 훼손,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실잠자리의 개체수와 종 다양성이 습지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생물지표'로 활용되는 이유다.
전세계 습지는 지구 표면의 약 6%에 불과하지만 전체 동식물 종의 약 40%가 살아간다. 지난 50년 동안 세계 습지의 약 35%가 인간 활동과 기후변화 등으로 사라졌다.
● 개구리를 위한 공간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인근에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 연구자가 북방붉은다리개구리(학명 Rana aurora)의 몸에 작은 무선 송신기를 부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라이언 와그너 박사과정생이 촬영한 사진이 전체 준우승을 차지했다.
연구팀은 무선 추적 기술로 개구리가 숲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주로 어떤 서식지를 이용하는지 조사한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봄 번식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30번 도로를 건너다 차량에 치여 죽는다. 연구결과는 서식지를 연결하고 도로 아래에 개구리가 안전하게 이동할 통로를 만드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 색깔로 싸우는 갑오징어의 결투'자연 속 관계' 부문 우승작은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스펜서만에서 촬영됐다. 암컷에게 접근하려는 수컷과 이를 가로막는 또 다른 수컷 호주참갑오징어(학명 Ascarosepion apama)가 맞붙은 순간이다. 빅터 우에르타스 호주 제임스쿡대 겸임연구원이 촬영했다.
이곳에는 매년 겨울 수만 마리의 갑오징어가 번식하려고 모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해당 종의 유일한 대규모 집단 번식지다. 갑오징어들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몸의 색깔과 무늬를 빠르게 바꾸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구애 신호를 보낸다. 사진 속에서도 두 수컷의 몸에 서로 다른 강렬한 색과 무늬가 나타나 있다.
● 작은 새들의 협공흰 배경 위에 검은 새 세 마리가 그림처럼 떠 있다. 갈색참매(학명 Tachyspiza fasciata) 한 마리를 작은 새 두 마리가 양쪽에서 몰아붙이는 장면이다. 알윈 하르덴볼 핀란드 천연자원연구소 연구원이 호주 멀리건스 플랫 우드랜드 보호구역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자연 속 관계'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작은 새들은 꿀빨기새류인 시끄러운수도사새(학명 Philemon corniculatus)다. 새들이 자신보다 강한 포식자를 여럿이 쫓아내는 행동을 '모빙(mobbing)'이라고 한다. 반복해서 울거나 포식자 가까이 날아들고 급강하하면서 사냥을 방해한다. 주변의 다른 새에게 위험을 알리고 어린 새가 포식자를 알아보도록 학습시키는 역할도 한다.
● 달빛 아래서 배우는 생태학어두운 밤바다 위로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세 학생이 그물에 잡힌 생물을 분류하고 있다. 리엄 브레넌 캐나다 뉴브런즈윅대 석사과정생이 촬영한 이 사진이 '연구 현장'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속 학부생들은 뉴브런즈윅 연안의 얕은 바다에서 5m 길이의 그물을 끌어 물고기와 무척추동물을 채집했다. 매주 같은 조사를 반복하면서 계절과 환경 조건이 바뀔 때 물고기 군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교실에서 배운 생태학을 실제 현장에서 데이터 수집과 종 동정, 생태계 모니터링으로 이어가는 모습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에버글레이즈 생태 복원사업, 물고기로 '건강검진' '연구 현장' 준우승작에는 미국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 생태계를 조사하는 연구자들이 담겼다. 미국 플로리다국제대 현장 연구원들이 습지에 1제곱미터 크기의 조사구를 설치하고 작은 물고기와 대형 무척추동물의 종류와 개체수를 확인하고 있다. 브랜던 구엘 플로리다국제대 환경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이 촬영했다.
에버글레이즈는 농업·도시지역에서 흘러든 인 등 영양물질로 수질이 악화돼 대규모 생태계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물고기와 무척추동물을 습지 건강과 먹이망 구조를 보여주는 지표로 삼아 수문 환경과 생태계가 복원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장기간 추적한다.
● 댐이 바꾼 풍경을 작은 행성에 담다캐나다 세인트로렌스호의 섬과 도로가 하나의 작은 행성처럼 둥글게 말려 있다. 앨런 톈 캐나다 퀸스대 박사과정생이 드론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입체 투영 방식으로 변환한 사진이다. '지구 보호'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사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롱솔트 파크웨이는 11개 섬을 잇는 약 10.1km 길이의 도로다. 이 섬들은 1950년대 모지스-손더스 수력발전댐 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기존 언덕의 정상부가 수면 위에 남아 만들어졌다. 댐과 수로 건설은 연결돼 있던 수생 생태계를 갈라놓고 주민들을 이주시켰지만 현재 이 지역은 추가 개발이 제한되며 조류 보호구역 역할을 하고 있다.
톈 박사과정생은 세인트로렌스강의 생물다양성을 조사하면서 이 사진을 촬영했다. 드론으로 강변 식생과 해안선을 살피는 동시에 물속에 남은 생물의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분석하는 환경DNA(eDNA) 기법을 이용해 생물을 직접 잡지 않고도 생태계 상태를 추적한다.
● 갓 부화한 아기 바다거북물가를 향해 기어가는 아주 작은 바다거북 앞에 사람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려와 있다. 인도 MES 아바사헤브 가르웨어대의 생물학자 아비지트 바야니가 촬영한 올리브각시바다거북(학명 Lepidochelys olivacea) 새끼로 '지구 보호' 부문 준우승작이다.
인도 서해안의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은 대규모 집단 산란보다 개별적으로 알을 낳는 경우가 많다. 지역 주민들은 흩어진 둥지를 포식자와 인간의 방해로부터 지킨 뒤 새끼들이 부화하면 바다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돕는다. 바야니는 언제 부화할지 알 수 없는 둥지 곁에서 며칠을 기다린 끝에 사진 속 순간을 포착했다.
● 물 마시는 매너티, 불곰의 영역, 나무 속 생태계수상작 외에도 세 작품이 주목받았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는 플로리다매너티(학명 Trichechus manatus latirostris) 세 마리가 방문자센터 주변 배수구에서 나오는 민물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맞댄 모습이 포착됐다. 염분이 계속 변하는 에버글레이즈에서 안정적인 민물 공급원은 매너티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인도 서부 히말라야에서는 히말라야불곰(학명 Ursus arctos isabellinus)의 굴을 찾던 연구자가 세 시간을 등반해 도착한 동굴에서 예상 밖의 장면을 만났다. 여름철 양과 염소를 방목하는 유목민들이 동굴을 자연 대피소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생계 공간과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겹치는 현실을 한 장면에 담았다.
호주 노던테리토리의 물에 잠긴 멜라루카 습지에서 루크 제프리 호주 서던크로스대 연구위원이 지상으로부터 수 미터 높이의 나무에 올라 나무껍질 속 미생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촬영됐다. 미생물들은 나무와 대기 사이에서 메탄과 질소 등 기후와 관련된 기체가 오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나무 한 그루가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가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 doi.org/10.1186/s12862-026-025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