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용 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편집자주] 의사과학자는 의대 졸업 후 의학, 과학, 공학 분야를 연계 지어 연구하는 의사인 동시에 과학자입니다. 임상 경험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로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첨단 바이오 및 의료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제 또는 치료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 차원의 백신 개발 기술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생태계 강화에 나섰지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도 사실입니다. 임상의에 대한 높은 선호도와 불안정한 연구 환경 등으로 국내 의사과학자 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국내 의사 중 의사과학자 비율은 1%에 불과합니다. 동아사이언스는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공중보건은 물론 첨단바이오 분야에서만큼은 상위 1%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국내 의사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의사과학자로서의 고충과 역할의 중요성 등을 조명해봅니다."대학병원 차원에서는 의사과학자를 배려하려는 노력이 느껴지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피부에 와닿는 지원은 부족합니다. 요즘 너무 비싸진 해외 논문 게재료를 지원해 준다거나,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과도기에 소속기관에서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거나, 해외 학회 참석을 원할 때 지원해주는 등 세부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의사과학자 진로가 대부분 '교수'라는 전형적인 트랙을 따르는데 똘똘한 20~30대의 연구 성과를 바이오기업의 지식재산권(IP)과 매칭해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산학연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신재용 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에버트라이 대표)는 의사과학자 양성·지원 시스템의 현주소에 대해 이처럼 아쉬움을 표했다. 학술 논문 게재 후 성과를 확장할 경로가 닫히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연구를 독려하고 의대 교수가 되는 길 외에도 산업과의 접점이 확대되는 환경도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암의 발병 기전을 밝히는 연구처럼 실험실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는 아니다. 예방의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체계에 어떻게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는 의사과학자다.
현재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및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적·문화적 장벽으로 산업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디지털 헬스케어 컨설팅 기업 '에버트라이' 대표직을 겸직하고 있는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 등의 연구 아이디어와 성과가 뜬구름 잡기에 그치지 않고 시장 진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략을 짜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제품 기획부터 시장 진입, 경제성 평가, 나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진출까지 전방위로 지원하고 있다.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들의 연구가 실험실 연구와 논문에 그치는 휘발성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교수가 된 뒤 다양한 정부 연구 과제를 수주하며 연구에 몰두했다"며 "그런데 30대 중반쯤되니 금방 휘발돼 버리는 연구보다는 현실 생태계에 직접 쓰이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나 기업이 개발한 기술의 잠재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에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신 교수는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내 의료 체계에서는 인력 투입 시간, 소모품 등 눈에 보이는 원가를 기준으로 비용이 산정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디지털 기술은 의사 개입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현재 방식으로 계산하면 단돈 몇백원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의료기술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아 많은 환자들에게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솔루션 혜택이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저는 무언가 개발하는 발명가는 아니에요. 좋은 기술과 제품이 규제에 막히지 않고 시장에 빠르게 전파되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국내에서 좋은 제품들이 많이 개발돼 환자나 일반 사람들이 AI나 디지털 솔루션 도움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죽기 전 제가 인허가나 시장 진입을 도와 통과시킨 제품의 도움을 받아보는 거에요. 제 연구와 노력이 이름 모를 불특정 다수의 인구 집단에게 유익하게 쓰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았다고 만족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일문일답. Q. 피부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예방의학 전문의를 다시 취득했다. 인기과를 두고 예방의학을 택한 이유는.“원래부터 예방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이 선망하는 세상은 어떤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피부과 수련을 시작했고 연차가 쌓일수록 진로도 보장되고 당직도 없고 생활이 정말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방의학 쪽으로 돌아섰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신다(웃음).”
Q. 에버트라이의 고객사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가장 많은 컨설팅 수요는 무엇인가.“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맡기는 풀 스콥(Full scope) 기업은 20여개, 부분적인 컨설팅을 합하면 50여개 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기업들의 인허가 역량은 상향 평준화돼서 단순 인허가보다는 시장 진입 전략 수요가 많다. 우리 제품을 어떤 병원이 쓸지, 심평원·복지부 고시 문안은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경제성 평가는 어떻게 받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다. 최근에는 미국 진출을 위한 갭 분석(Gap Analysis) 등의 문의도 늘었다.”
Q.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현직 의사들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실제 진료 현장에서 제미나이나 클로드 같은 AI를 얼마나 쓰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개원가 등에서는 환자 검사 수치나 엑스레이를 AI에 입력해 보면서 활용하고 있을 거다. AI가 발전할수록 의사는 지식 암기나 단순 판독보다 '인간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 AI가 도출한 지식을 기반으로 내 판단이 맞는지 확인한 뒤 환자에게 더 자세히 설명하고 케어하는 소통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Q. 대학병원 교수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컨설팅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의사들은 절대 귀찮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웃음). 원내·외 망이 분리돼 있어 태블릿으로 따로 로그인해야 하는 기술을 제안하면 아무도 안 쓸 거다. 임상 현장 경험이 없는 연구자가 창업하면 병원 프로세스상 간호사나 전공의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현실적인 워크플로우 콘셉트를 잡아주는 데 임상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